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고모부의 서글픈 병원 유랑기

할아버지바리스타님에게는 연년생으로 한살이 많은 누님 한분이 계시다. 할아버지바리스타의 누님, 그러니까 딸사장의 고모는 고모부와 함께 충남 홍성에 거주하고 있다. 면과 리의 명칭이 동일한 아주 작은 마을에 사신다. 고모부는 원래 엔지니어였고, 고모는 전업주부였다. 사촌들이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로 내려갔으니 올해로 대략 이십여년쯤 되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르고 보니, 고모도 고모부도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처럼 시골 노인들이 다 되었다. 두 분도 그럭저럭 농촌 생활에 만족, 까지는 아니고 적응을 잘 하는 듯 했다. 그닥 곰살 맞은 짓을 잘 하지 않는 나는 고모에게 큰 일이 아니면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고모의 남동생인 아빠와 정말 곰살맞게 사람을 잘 챙기는 나의 남동생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릭고 얼마전, 제목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고모부가 갑작스레 쓰러지셨다. 별다른 전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점심 나절에 식사를 마친 두 분은 집 앞 마당의 평상에 누워 계셨다고 한다. 방금 찐 옥수수를 하나씩 입에 물고 하늘 바라기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고모의 말에 고모부가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더란다. 워낙 말이 없으신 양반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날 따라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란다. 그래서 고모가 벌떡 일어나보니, 고모부의 입이...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평소, 그 연세의 엄마들이 아빠들에 대해 대부분 그러하듯, 고모도 고모부를 조금은 귀찮아 하는 듯 했다. 그 숱한 세월 어찌들 함께 사셨는지, 고모의 말에 따르면 고모부는 하는 것마다  (고모를) 귀찮게만 하였다. 그래서 우리 아빠 말대로 '어차피 무얼해도 마누라 퉁박이니 가만히 있는 것이 남는 장사'인 사정은 고모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고모가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고모의 걱정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아들딸 모두 장성하여 집안을 꾸릴 때까지 무탈하기만 했던 고모가 여든이 코 앞인 나이에 팔자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모부가 증세를 보이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는 반나절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충남홍성의 시골동네에서 서울근교의 종합병원까지 병원을 찾아 올라오는 과정은 80대 노부부가 겪어내기에는 그 과정이 이만저만 위태위태하고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여의치 않아 이웃에 사는 택시기사를 부르고, 역시 노인이기는 마찬가지인 기사님과 고모가 고모부를 차에 태워 읍내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별 다른 처치를 할 수 없는 읍내병원은 보다 규모가 큰 상급 병원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처치가 가능한 병원은 인근 시를 뒤져도 두 세곳 밖에 되지 않아서 고모부를 받아줄 만한 병원을 찾는데 다시 몇시간을 소비했다. 되도록이면 자식을 근심시키지 않겠다, 가 평소 인생의 지침인 고모는 그제서야 마지못해 자녀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물론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사촌 여동생의 평소 성품으로 보자면- 고모의 갑갑함을 퍽이나 오랫동안 쟁쟁대며 나무랐을 것이다.  거기에 다둥이의 입시 뒷바라지를 하는 올케와 회사일로도 바쁜 오빠까지 한 바탕 소동을 치룬 후에야 시설이 좋은 서울근교의 종합병원으로 고모부를 옮길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벌써 그와 같은 일이 있은지도 석달이 다 되어간다. 고모부도 무사히 잘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셨고, 고모의 성화에도 뙤약볕에 밭일을 나가신다고 한다. 아버지가 고모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옆에서 가만히 듣자면,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흠 많고 탐탁지 않으면서도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을 하는 고모나 우리 엄마의 심리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것도 그닥 미남자 축에 들지 않는 두 어른을 두고 말이다. 그걸 두고 우리 엄마는 또 이렇게 한마디를 한다. 너두 살아봐라.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의 후일담이다.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 하나 없었지만. 고모부의 일을 가장 심각하게 들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 할머니 마담님이었다. 그 무렵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어릴적에 '전설의 고향'을 보고나서 무서운 마음에 화장실에 못가던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모부의 이야기가 엄마에게는 어쩌면 '전설의 고향'에 비견될 만한 현실 괴담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I have dream 


마르틴 루터 킹처럼 거대하고 인류애적인 소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나름대로의 소시민적인 야망이란 것이 있다. 지금보다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나에게도 적당한 기회가 오면. 휴양객들이 많이 찾는 교외에 주차장이 넓은 카페 건물 하나를 갖고 싶다. 건물 윗층엔 조촐한 살림집이 있고,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사진찍기에 좋은 작은 정원을 가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품종이 좋은 스페셜티를 골라서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포부가 속좁은 40대 아줌마의 막연한 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여유롭고 느긋한 전원생활을 우아하게 즐기고 싶은 생각말이다. 


솔직히 내가 봐도 우리집 커피는 맛이 있다. 이렇게 맛이 있는 커피를 보다 좋은 조건에서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소개하여 알리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물론, 내가 능력이 좋아서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 커다란 건물을 소유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좋겠지만, 실상은 교외에 건물 하나 같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요즈음음 사람들이 선호하는 카페들은 대부분 교외에 많이 있다. 큰 규모의 제빵소를 갖추고, 가족단위의 여가공간을 제공하는 카페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나도 자연 욕심이 날 수 밖에.  


그런데, 고모부의 일이 있고나서 엄마는 틈만 나면 참으로 집요하게 나에게 다짐 비슷한 것을 받아놓으려 한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말이라도 편하게 해준다 생각하면 좋으련만. 내가 우리 엄마 뱃속에서 나온 까닭에 우리 어른의 성품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냥 좋아서 해 본 말이 안통하는 엄마다. 


엄마는 오늘도 나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한다. 


난, 서울 떠나고 싶지 않아. 우이동이 좋아. 친구도 많고 병원도 가깝고.

난, 네가 시골 내려가서 살자는 말 안했음 좋겠어. 


고모는 그렇게 혼이 나고도, 도시는 답답하다고 한다. 평소 울증이 있는 고모는 마음 답답해지면 밖에 나와 김이라도 메고 풀이라도 뽑아야 살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노인이 살기 좋은 환경은 시골 보다 도시라고 한다. 주위에 지켜보는 사람이 많고, 교통도 편리하고, 복지나 의료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우리 엄마가 자식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도시 생활을 고집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고모와 고모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 아빠와 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생활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잉걸불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