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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운명감정이 필요하신가요?

얼마 전, 사촌동생이 카페에 놀러왔다. 나는 부모님 양쪽으로 사촌이 꽤 여럿 있는데, 가게에 놀러온 사촌은 막내 이모의 딸이었다. 사촌은 올해로 스물 아홉,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태어나서 나이 터울이 상당한 편이다. 사촌이 가게에 놀러온 것은 갑작스레 우리집 커피가 생각 나서라거나, 언니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촌이 가게에 온 것은 이모부, 즉 할아버지 바리스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이모부와 각별한 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할아버지 바리스타는 커피에 대한 각별한 취미 외에도 참 많은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중에서도 명리에 대해서는 유명 역술가들도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할아버지카페를 찾아와서 할아버지바리스타님과의 운명상담을 한다던가 하는 일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운명감정을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나중까지도 마음의 상처가 오래 남는 경우를 나는 자주 보았다.  우선, 할아버지 바리스타님은 그냥, 명리에 밝을 뿐, 전문 상담사가 아닌 까닭에 당신이 본대로 이야기할 뿐이고, 상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전혀 소질이 없다. 그것은 할아버지에게 딱 하나 없는 소질인데, 할머니 마담님을 통하면 그 답답한 사정에 대해 2박3일 정도는 들을 수 있다. 


두번째는 그 명리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가능성의 학문임에도 하나, 둘, 스스로의 인생행로에 비추어 어쩐지 맞아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역시, 어쩐지 믿고 싶어지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어쩐지'는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기분이나 감정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낙담을 하는 경우를 나는 자주 본다. 솔직히 내가 아버지 옆에서 주워 들은 명리는 그냥, 명조(내담자의 사주)가 지닌 성품과 인생행로에 대한 가능성을 설명해줄 뿐, 한 인간이 가고자하는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는 거의 점치지 못한다. 이를테면,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이슈가 될 만한 사건들이 언제쯤 다가올 지에 대한 가능성은 점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경찰이 될지, 아니면 도둑이나 살인자가 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똑같은 사주를 가지고 있어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누군가는 시골의 벌치기가 되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세도가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우리 할아버지바리스타님 뿐만 아니라, 다른 운명감정사를 찾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누가 되었건, 운명을 감정하고 난 뒤, 두고 두고 찜찜하다는 건. 명리학자가 감정을 어마어마하게 잘 해서라기보다, 내 삶의 방향이나 목적지가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아서 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한 인간의 앞날은 언제나 분명하지 않은 까닭에 늘 궁금하다. 그리고 또 그 궁금증이 클수록 호기심과 불안함 또한 함께 늘어간다. 긍정적 감정의 경험보다는 부정적 감정의 경험이 훨씬 더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긍정적인 감정의 경험마저, 부정적 감정의 경험에 압도되어 그 기쁨과 환희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할아버지바리스타로부터 앞서의 이야기를 귀에 딱정이가 앉을 만큼 들었음에도 나의 어린사촌은  또 다시 자신의 앞날을 물으러 왔다. 


아닌게 아니라. 사촌의 행색을 보니 내가 봐도 자신의 불안한 앞날이 걱정될만도 했다. 지난 봄, 지방으로 일을 나갔다가 뒤에서 쫓아오던 자동차에 받쳐 병원신세를 졌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한 채 쩔둑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간에 있었던 자신의 불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 


올해, 보는 점쟁이마다 잘 될꺼라고 했는데,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어. 하는 일마다 끊기고 다치고... 


-아무리 제 이모부라지만, 감히. 우리 아버지를 점쟁이 취급한 것이 조금 괘씸하긴 하지만. -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사촌의 걱정에 아버지를 대신해 상담을 해주었다. 나는 사주나 팔자를 모르니, 지극히 상식적인 것만 대답해 줄 수 있었지만. 어쩔 때는 아버지의 명리보다 내 이야기가 더 약이 될 때도 있으니까.   


운이 좋으니깐, 그 만큼 하고 말았지. 더 안좋았음 어쩔뻔 했어? 사람사는 데, 운좋다고 다 좋은 일만 생기나. 나쁜 일 막을 때도 있으니 운이 좋은거지. 캬하, 내가 말을 해놓고도 어찌 이리 기막힌 말을 했는지 스스로가 기특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사촌의 궁금증과 불안감은 크게 해소되지 않는 듯 했다. 기어코 이모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를 만나고 갈 심산인 것 같았다. 나 또한 우리 아버지를 잡다한 점사나 봐주는 점쟁이로 내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같은 것이 있었다. 일종의 자식된 도리라고나 할까? 뭐가 또 궁금한건데? 조금은 까칠한 감정의 색깔을 가지고 사촌에게 물었다. 나이가 사촌보다 많은지라, 이 정도면 조금은 어려워하겠지, 하는 심산이었다. 


사촌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 듣고보니, 그녀라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거기서 거기이긴 마찬가지였다.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좋은 운에 대한 기대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럴땐, -아버지께는 조금 죄송한 일이긴 하지만- 명리학자의 해석이나 점사에 대해 약간은 깍아내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의 결과에  맹신하지 않게 하는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얘,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이십년째 나아질 거라고 했어. 그래도 봐라. 결국에는 우이동에서 카페 주인이나 하고 있잖아. 내말에 사촌이 조금은 바람이 빠진듯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조금은 차분해진 듯했다. 그게 어떄서? 언닌 그래도 재미있잖아? 자리도 잡아가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큰 인물은 못되었잖아. 나도 마음 같아서는, 우아한 드레스 자락 계단 위에서 집어끄는 셀럽은 되고 싶었다고.  그게 두고 두고 아쉽긴 하지. 그제야 사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 또한, -앞으로 운이 좋다는 점쟁이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큰 꿈을꾼 것 같았다. 사촌을 일부러 실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긴 했지만.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사실, 나의 사촌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 연기자다. 그녀의 직업이야 말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고, 이름이 알려질 때까지 각고의 노력과 고생을 해야하는 직업이다.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많아서 좋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추가 많은 옷을 입을 때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하나씩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조금 꼰대같기는 하지만, 난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좋은 연기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좋은 연기자이든, 아니든. 아니면 전혀 다른길을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목표와 방향성이 분명하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일들이야 별 것 아닌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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