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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9. 2022

실례합니다만, 저는 효성스런 딸이 못됩니다.

할아버지 카페가 개업을 한 지는 5년차에 접어 들었고, 내가 부모님과 함께 가게를 꾸려간지도 만3년이 되었다. 비록, 내 이름으로된 가게이긴 하지만. '할아버지카페' 간판이 걸린 가게에, 그것도 그냥저냥한 이유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두 발을 담그는 것이 처음에는 그리 편치 않았다. 여기서의 '그냥저냥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십을 훌쩍 넘은 미혼의 여성이 회사를 나온 뒤 마땅히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가게에 눌러 앉게 된 그런 사연이었다. 뭘,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폄하하느냐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남들처럼 서른한둘이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직장은 자연히 그만 두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게 되리라는 아주, 평범하지만 염치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인생플랜이 한해, 두해, 미뤄지다 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부모님 가게에 얹혀서 연명 비슷한 것을 하게 되었으니,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가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바리스타님과 할머니마담님외에 잉여로 나와 앉아 있는 딸사장을 손님들 대부분 의아하게 여겼다. 말이 사장이지,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눈에는 그다지 큰 쓸모가 있어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손님들이 생각하는 쓸모와 비레하여 조금 모자라게 비쳐졌고, 간간히 그에 걸맞는 혼처를 주선하는 손님이 많았다. 


그래도 가게에 나와서 내 일을 찾고 한해, 두해, 그렇게 삼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행하게도 스스로에게 조금은 뻔뻔해진 것 같다. 아니면, 맨처음 가졌던 자격지심과 부끄러움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가게를 찾는 손님도 마찬가지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과 나의 관계가 서로 익숙해지면서, 나의 사생활이나 일상들 또한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조금 더 친해진 손님들은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리고 또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특히, 내가 큰아빠, 큰엄마들이라고 부르는, 우리 할아버지바리스타님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이 내 손을 어루만지며 하시는 말씀을 듣노라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세상에! 


나를 두고 효녀란다.  당신네 자녀들은 제식솔 챙기기에 급급한데, 부모님의 여생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가게를 지키는. 이쯤하면 효녀가수에 이은 효녀바리스타가 탄생하는 건가. 분명 어르신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가운 시선은 아니다.


사실, 효자나 효녀라는 것이 겉으로 보면 꽤나 그럴사 하지만. 본인 스스로 정신을 똑똑히 차리지 않으면 세상, 그렇게 모자란 인물도 없다. 내 주변에서 보면,  주체적으로 효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품이나 능력이 매우 훌륭하다. 그러한 효자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자기가 없어보이나, 알고보면 사람들을 포용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사회적 실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입지를 다진 경우가 많다. 요즈음의 효도는 부모님을 어른으로 섬기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노인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즈음의 효도는 경제적인 조건이 어느정도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전, 나는 작은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있던 병실에는 나말고 세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그 중에 두 사람이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외에는 병실에 상주 할 수 없는 요즈음의 사정도 사정이지만, 어른들을 수발하고 간병하는 일 대부분 전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문 간병인이 하는 일은 옛날의 간병시중을 들던 며느리나 딸들이 하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전문적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연세많은 어르신들의 건강 관리나 병원신세를 지는 일 또한 많아졌다. 그 모든 일들에 들어가는 노동이나 수고 또한 금전적인 것이 보장되어야만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다. 효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녀의 경제적 수준이 부모님의 노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것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자녀가 어떠한 사정으로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해서,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정도는 매우 바람직한 경우에 든다. 자녀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육아나 가사일을 도움 받으며, 그 댓가를 합리적으로 지불하거나 생활비를 부담하는 정도 일 것이다. 그것도 앞서말한 육아나 가사가 가능할 만큼 부모님이 정정하시다면 말이다. 그것 말고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부모님의 경제활동에 덕을 보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모신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이런 경우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얹혀산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 한심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다. 


나는 부모님의 경제활동까지는 아니지만.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생활 전반에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가게일은 물론이고, 집안의 가사도 어느 정도는 도움을 받는다. 그런 까닭에 실제로는 효자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몇몇 어르신들의 바램처럼 나를 희생하여 엄마 아빠의 노후를 책임질 생각 또한 눈꼽만큼도 없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반드시 해야겠지만, 그래도 하루빨리 부모님의 둥지에서 벗어나서 캥거루족에서 탈피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그럼에도 우리 할아버지카페의 일면만 보고, 나를 효자나 효녀의 테두리에 넣는 것은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부끄럽고 불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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