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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20. 2022

관심법, 명상의 시작

요즈음은 동네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으로 친숙하고 푸근한 아저씨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김영철 배우는한 때, 선굵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근엄하고 진지한 이미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배우인 그도, 그리고 시청자인 우리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디어에 능한 젊은 세대를 통해서 논리나 공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위엄과 카리스마를 꼬집는 유행어와 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야인시대의 김두한이 미군앞에서 외쳤던 '사딸라'나 달콤한 인생의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관심법이 있다.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영철 배우가 연기했던 궁예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 관심법이었다. 이 궁예의 관심법이 어찌나 인상깊었던지,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에 태어난 친구들까지도 모르지 않을 정도다. 


얼마전, 한밤중까지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를 뒤적대다가 대략 2년전쯤 만들어진 동영상을 보고는 그만, 깔깔깔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관심법으로 신하들을 닥달하던 궁예가 갑자기 터져나온 신하의 기침소리에 한마디 한다. 누구인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사실, 생각해보면 동영상보다는 그 아래에 달아놓았던 댓글이 더 걸작이었다. '기침의 위험성을 예고한 영웅'  결국, 기침을 한 신하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구걸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관심법. 마음을 꽤뚫어 보는 법술을 뜻한다. 타인에 대한 적중률이 그닥 좋지 않아서 엄한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위의 상황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꿰뚫어 볼 때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서 안분자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사회적 역량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사실. 제작년 무렵에 명상에 대한 책을 한권 출간하고서는 되도록 명상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은 명상을, 그것도 전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을 내고보니, 나의 부족함이나 편협한 사고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어서였다. 내가 이러고도 명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후자의 이야기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비판이나 성찰, 또는 도덕군자 같은, 재미도 없을 뿐더러 듣는 사람에 따라서 빈정상하는 소리만 해야 할터이니, 각설하고. 


이따금 내가 명상을, 그것도 꽤나 심취해서 책까지 내었다고 하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꺼내는 말이 바로, 이 관심법이다. 그것도 꼭 장난스레 소림사의 승려들처럼 한쪽 손으로 반 합장을 하며, 관심법~ 하고 끄트머리를 꼬아서 말한다. 처음엔 난처하기도 하도,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에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나중에 곰곰히 살폅보니,  이 또한 김영철 아저씨가 연기한 궁예의 영향이 크다고 할까. 그래서 '관심법'은 꼭 그렇게 표현해야만 그 '맛' 이 사는 것 같았다. 


사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법은 솔직히 하나마나하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집중하기 힘든데, 타인의 마음까지야.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을 인도한다며, 정색을 하고 궁예같은 소리를 한다면, 주먹을 날려도 좋다. (물론, 민형사적인 책임은 감내해야겠지만) 


어쩌다 관심법이 현재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 지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본다는 것은 지극히 나 한사람, 개인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한 관심법이 가능하려면, 타인의 마음 작용과 그 구조를 알아야 하는데, 한 개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그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감정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타인의 마음을 읽어낼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건 사회적으로 대단히 보편적이고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알아지는 것이지, 우리의 의지로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관심법에 대적할 만큼 섬세하게 타인의 삶이나 생각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전문적으로 타인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투철한 직업적인 소명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헌신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들 또한 알고보면 타인의 마음을 읽어낸다기 보다는 나의 지적 능력에 타인을 비추어 분석해낸 결과를 이야기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마음이든, 자신의 마음이든. 마음을 읽어내고 사고하는 능력을 '충분히' 가진 것은 - 지금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인간만의 고유의 능력이다. 분명한 사실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원인은 아마도 '언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몸짓이든,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소리이든.  마치 홀로그램처럼 스쳐가는 내안의 의식을 타인과 공유하려면 '표현'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와 같은 표현을 하려면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내 안의 마음을 인식하고 느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행위를 보편적으로 '본다'라고 한다. 


나는 십여년 가까이 위빠사나 명상을 했다. 위빠사나명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여러가지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알아차림' 이다. 알아차림은 빠알리어로 '사띠(sati)' 라고 하는데, 단지 알아차림 한가지 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인식, 꺠어남, 주의, 자각, 알아차림, 기억 등의 함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함의적 의미로 할 수 있는 행위 또는 우리 안의 능력을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이것은 우리안의 본능적인 능력인 관계로 이것이 예리하거나 무딘 사람이 있을 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알아차림을 통하여 스스로의 일상을 매 순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보고듣고느끼는 일체의 행위 모두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행위와 감각, 감정, 기분들이 우리안에 쌓여져 마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이 거쳐간 여정과 경험,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이고 관심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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