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스물’이라는 말이 떠오는 건 2019년, 시사잡지 <한겨레 21> 제12242호에 실린 한 기사를 통해서였다.
기사 제목은 ‘마흔, 잔치가 시작됐다’였고, 소제목에는 “마흔은 ‘두 번째 스물’, ‘두 번째 사춘기’라고 불린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다가오는 마흔을 맞아 ‘다시, 스물’이라는 제목으로 자전적 내용의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는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마흔.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기준이자,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기에 쉼표가 필요했다. 또한 사춘기에 접어들던 10대 시절부터 늘 생각했던 40대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뭐가 잘못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절실했다.
나는 2021년 4월 29일, 마흔을 맞았다. 1981년 4월 29일 오전 5시 30분쯤 세상에 태어나 정확히 40년을 살아온 것이다. 이때부터 1년 정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글을 진짜로 쓰겠다 다짐하고 조금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인생 전반부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을 쓰는데 ‘용산주공아파트’를 빼놓고 글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마침 내가 마흔이 된 해 부모님은 40여 년간 살아온 용산주공아파트를 떠나 조금 덜 낡은 아파트로 가셨기에 자연스레 이사 준비를 하며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추억이 담긴 용산주공아파트를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이 글은 시작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4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 40년을 내다보는 시간을 기록. 7개월 정도 글을 완성해가면서 나는 이 시간이 두 번째 스물을 맞는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란 걸 금세 깨닫게 됐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도망침의 연속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삶의 과정에서 맞닥뜨린 선택의 결과가 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난 그 선택의 분기점에서 늘 도망침을 선택했다. 그래서 지금 곁에는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도망침의 가장 큰 변명은 ‘꿈’이었다. 나는 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자리를 피할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 내 인생을 돌아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끄러운 행동들일 뿐이었다.
마흔이 돼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을 걸고 하나에 미쳐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용기가 없다는 건, 후회할 일이 많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겁쟁이 이카로스(Icaros).
늘 태양을 동경하면서도 타버릴까 두려워 날갯짓 한 번 하지 못했던, 쪼그라든 날개를 짐짝처럼 짊어지고 있는 이카로스. 그렇게 40년을 살아왔다. 마흔을 맞아 내게 해주고 싶은 가장 간절한 선물은 과거의 나와 이별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살지 아무도 모르지만, 큰 사고 없이 삶을 이어간다면 아마 살아온 만큼 살 수 있지 않을까? 늦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바쳐 추구해야 할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첫 번째 목표. 눈을 감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장편영화 한 편을 꼭 만드는 것.
남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내가 평가했을 때 순수하게 만족할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세상에 남기고 싶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빨리 시나리오로 기록해야 한다.
어림잡아 30년이다. 30년 동안 충분히 한 작품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운 좋게 내 영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빨리 만들겠다는 조급함으로 나를 괴롭히지는 말자.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장편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 나를 살게 해주는 첫 번째 목표다.
두 번째 목표. 눈을 감기 전까지 후회 없는 사랑을 한 번 해보는 것.
운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때로는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니 난 마흔이 되도록 진실한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서로가 뜨겁게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서툰 실수와 조급함 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진심을 이해해주지 못했다고 변명하며 상대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과연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던지. ‘진실한’이라는 형용사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최근에야 깨달아가고 있다.
이젠 결혼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조급해질 필요도,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어졌다.
문득, 나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듯, 밀린 업무를 처리하듯 결혼이라는 중요한 일을 ‘해치우고’ 싶지는 않다.
다시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가는 과정에서 인연이 닿아 누군가를 만난다면 또 한 번 용기를 낼 것이다. 진실한 사랑,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다. 그러면 분명 눈을 감을 때 얼굴에 미소를 남길 수 있을 거다.
세 번째 목표. 눈을 감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많은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머리로 기억하고, 가슴에 담는 것.
40년 동안 내 발길이 닿았던 곳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 그리고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전부다. 내 조국 또한 마찬가지. 우선 고향인 충주와 군 생활을 보낸 양구·인제·원통, 20대와 30대를 보낸 서울, 대전, 세종, 내포 정도뿐이다. 잠시 머물렀던 곳을 포함해도 제주, 부산, 광주, 통영, 여수,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등등. 스쳐 지나간 곳까지 포함하면 좀 더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빈약하다.
최소한 내가 나고 자란 조국의 모습은 좀 더 자세히 가슴에 담아야 한다. 나를 키워준 지구 또한 마찬가지다.
마흔부터는 여행을 떠나는 데 주저하지 말자. 한 번 사는 인생, 돈보다도 추억이 더 소중한 법. 그렇다고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면 아무것도 못 할 테니 돈은 넉넉하진 못해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면 만족하자. 여유가 있을 땐 언제든지 떠나자. 아니 여유를 만들어 떠나자. 우선 혼자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둘이 떠나자.
인터넷에는 생일별 탄생화와 꽃말에 대한 정보가 흔하게 돌아다닌다. 찾아보니, 내 생일의 탄생화는 동백(Camallia), 꽃말은 ‘매력’이었다.
동백나무에 핀 빨간 동백꽃을 가끔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일의 탄생화라니 왠지 기분이 좋다. 거기에 꽃말은 과분하게도 ‘매력’이다.
매력.
40년을 살아오면서 난 내가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제부터 내 매력이 뭔지 찾아보는 것도 네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솔직히 난 별 볼 일 없는 놈이다. 그래도 꿈을 가질 권리가 있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자유도 있다. 이 당연한 진실이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는 헛된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서글프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용산주공아파트는 40여 년 동안 우리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돼줬고, 내게는 추억을 남겨줬다. 그리고 지금, 용산주공아파트를 떠난 후에는 내게 지난 시간을 바탕으로 새로운 곳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잡이가 돼주고 있다.
용산주공아파트의 도움으로 7개월 동안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보니, 마흔 이후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들이 뚜렷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별을 찾은 것뿐이다.
잠시 길을 잃었던 순간, 당황하지 않고 노을이 내리길 기다렸고, 차분하게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별은 떠올랐다. 북극성과 별자리를 보며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용산주공아파트는 내 인생이란 우주에서 북극성이었나 보다.
방향을 다시 확인했으니,
이제 다시 걷자.
뚜벅뚜벅.
걷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