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생 도맹그
생 도맹그
다이노들이 기스가야Kiskella 또는 아이티라고 부르던 섬, 산타 마리아호가 좌초되어 콜럼버스 일행이 표류해 흘러 들어온 섬. 그들을 구출해 주고 정착하도록 허락해 준 다이노 가시관 구가나가리가 다스리던 땅, 유럽인이 최초로 아메리카에 정착한 스페인 타운 라 나비다드와 라 이사벨라가 있는 섬. 그 섬이 히스파니올라다. 스페인은 황금에만 집중했다. 다이노들을 노예로 묶어 동쪽으로 끌어갔다. 황금과 진주가 나는 동쪽 끝 산토도밍고에는 스페인 정복군을 배치했다. 다이노가 농사짓고 살던 섬 서쪽은 텅 비었다.
야생화된 돼지와 소, 말이 차지했다. 최상위 포식자는 들개 떼로 변한 도고 프레사였다. 스페인이 돌아보지 않은 빈 땅에 또 다른 우수마발이 창궐했다. 콜럼버스처럼 난파한 배 조각을 붙잡고 섬으로 표류한 자들이 라 이사벨라와 라 나비다드에 몰려들어 똬리를 틀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출신 해적들이었다. 카리브 해적으로 전설이 된 캡틴 잭 스패로우의 근거지도 히스파니올라 서쪽 앞바다 토르투가 섬이다. 토르투가는 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다. 콜럼버스가 이 섬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북이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해적 소굴은 밀수의 근거지였다. 1605년에 스페인 왕실은 황금은 나지 않고 성가시기만 한 히스파니올라섬 서쪽을 완전히 포기했다. 콜럼버스가 기스가야 땅을 침공한 지 약 100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때부터 이 섬은 동과 서로 나뉘었다. 스페인 왕실은 노략을 당하지 않고 보물을 수송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1520년 무렵부터 멕시코와 페루에서 금은이 쏟아져 나오자 이제는 산토도밍고마저도 용도를 잃었다. 반면 아바나는 황금 항로의 중심 항이 되었다. 돈을 따라서 온 스페인 식민자들이 산토도밍고를 버리고 아바나로 가버렸다. 노예 삼을 다이노도 없이 왕실 관리와 성직자들만 오도카니 남았다. 히스파니올라섬은 높은 산맥으로 동부와 서부가 분리되어 있다. 동부에 등뼈 같은 큰 산맥이 있고 서쪽에 그보다 낮은 산줄기가 있다. 서쪽 산줄기를 다이노들은 아이티라고 불렀다. 해적 소굴 아이티 땅을 프랑스 해적들이 차지했다. 스페인은 이미 프랑스를 막을 능력을 잃었다. 1659년에는 루이 14세가 아이티를 프랑스의 식민지로 삼았다. 이것이 프랑스 최초의 식민지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다이노의 땅 기스가야에서 식민주의 시대의 첫 문을 열었다. 프랑스는 1804년 아이티혁명으로 흑인 노예들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약 150년 동안 식민지로 착취했다. 오늘날 아이티에 프랑스식 지명이 많은 이유다. 이때 카프 프랑수아Cap – Français라는 최초의 정착촌을 세웠다. 이곳이 현재 카프-아이티앙Cap – Haïtien이다. 프랑스는 프린스라는 이름의 배가 정박한 항구라는 뜻을 가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로 수도를 옮겼다. 가시관 저라가Xaragua가 다스리던 5,000년 다이노 문명의 근거지였다. 루이 14세는 아이티 땅 식민지에서 노예 플랜테이션 사업을 할 국영기업의 이름을 생 도맹그Saint-Domingue라 했다. 생 도맹그가 관리하는 땅이라 아이티를 생 도맹그라고 불렀다. 생 도맹그는 12세기에 도미니크 수도회를 조직하고 종교재판을 설치해 로마 교황청에 반하는 카타리파를 잔인하게 심문한 스페인의 도미니크 신부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루이 14세도 주님의 사냥개 도미니 카니스Domini canis를 지극히 숭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