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06. 태양왕

by 조이진

태양왕

바스크의 종가라 할 나바라 군주이기도 한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절대군주였다. 루브르 궁전에서 궁정의 화려한 의상과 댄스파티를 즐겼던 그는 베르사유궁을 짓고 왕궁을 옮겼다. 이 궁은 한 번에 2만 명이나 되는 지방 귀족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베르사유궁을 지은 것은 귀족들을 수용하여 그들을 감시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그는 미식과 식탐도 즐겼다.

프랑스 절대 군주 루이 14세

먹는 것으로 절대 권력을 과시했다. 전쟁도 좋아했다. 그는 세계사에 굵직하게 기록하게 기록된 전쟁만도 다섯 차례나 치렀다. 대개는 패했다. 전쟁을 하는 데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전쟁에 들어가는 모든 재정을 재상 콜베르가 맡아 조달했다. “거위가 비명을 적게 지르게 하면서 거위 털을 가장 많이 뽑는 것이 징세 예술”이라고 말한 자가 콜베르다. 거위가 비명을 지르면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만 남겨주고 세금을 거두어야 징세의 예술이라는 의미였다. 그의 능란한 거위 털 뽑기로 루이 14세의 세입이 대폭 늘어났다. 그가 재상일 때 루이 14세는 서인도제도와 캐나다 등에서 여러 식민지를 확보했다. 빠른 해적 산업으로 영국보다 먼저 식민지를 차지했다. 그는 사치와 전쟁을 좋아하는 루이 14세를 위해 식민지에서 최대한 많은 수입을 창출했다. 이전의 군주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대규모로 흑인들을 생 도맹그에 투입했고 생 도맹그는 당시 유럽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40%를 생산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생 도맹그를 ‘앤틸리스의 진주’라 불렀다. 아이티는 벨기에 정도 되는 좁은 땅이다. 하지만 영국이 지배한 자메이카와 서인도제도의 모든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설탕이나 커피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했다. 생 도맹그에 79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있었다. 이 시기 대서양 전체 노예무역에서 거래된 노예의 삼분의 일이 생 도맹그로 들어갔다. 앤틸리스의 진주는 노예의 뼈로 빚어진 유기체였다. 그 진주가 프랑스 궁정문화와 볼테르, 루소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고급스럽게 치장했다. 생 도맹그에서 유입된 돈으로 양산된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이 프랑스혁명을 주도했고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세계가 급변했다. 프랑스가 이 섬에서 사업하기 위해 ‘프랑스 서인도 콤파니아’라는 이름의 기업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생 도맹그에 수입할 노예무역과 설탕, 커피, 담배, 푸른색 염료 인디고, 카카오 플랜테이션 사업을 했다. 서인도 콤파니아는 생 도맹그에서 시작해 아마존, 카리브, 캐나다까지 모든 식민지 땅에서 프랑스 왕을 대신해 사업을 벌였다. 이 기간은 프랑스 역사가 요동치고 세계 제국주의 세력 판도와 힘의 균형도 급변한 때다. 유럽이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로 전환할 때 그 요동친 힘의 바탕이 바로 카리브였다.

루이 14세의 재상 콜베르. 식민지를 착취해 루이 14세의 사치와 전쟁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했다.

루이 14세는 ‘곧 국가’였다. 정치든 사생활이든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는 늘 관심받고 싶어했다. 예술에서도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자 했고 오페라에 발레리노로 몸소 출연하기를 즐겼다. 투자자가 직접 주연을 맡는 셈. 절대 군주 시절인지라 오페라는 군주를 우상화하는 홍보 수단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스펙터클 오페라에서 태양의 신 아폴로의 역을 맡았다. 아폴로로 분한 루이 14세는 자신의 정견과 정책을 노골적인 대사로 노래했다. 그날부터 그는 태양왕으로 불렸다. 루이 14세는 오페라 극장에서 자신을 상징하는 특별한 장치를 원했다. 그가 트럼펫과 팀파니를 오케스트라에 편성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입장할 때 이 두 악기를 사용하게 했다. 전쟁터 악기가 처음으로 유럽 궁정 오케스트라에 편성되었다. 그가 출연한 오페라에서 트럼펫은 유난히도 음역이 높았다. 루이 14세 시대부터 트럼펫이 크게 유행했다. 바로크 시대에 트럼펫은 군주를 상징하는 악기가 되었다. 바흐나 헨델도 관현악곡에서 황제의 이미지를 표현할 때는 트럼펫을 선택했다. 이 시기 트럼펫은 아직 밸브가 장착되기 전이므로 조옮김이 안 되었다. 그 시대의 트럼펫 연주는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를 생각하면 다르지 않았다. 팀파니는 알모라비데가 이베리아를 침공할 때 처음 유럽 대륙에 가지고 들어온 케틀드럼이다. 그런 팀파니를 프랑스 오케스트라에서는 팀발이라 했다. 아프리카적 음색과 음정을 유럽 취향에 맞게 개조했다. 알모라비데가 스페인에 갖고 왔을 때 팀파니는 동물이 피를 먹여 검은 색이었지만 프랑스에서 가죽은 백인의 피부를 상징하는 흰색이었다. 크고 박력 있는 소리를 내는 팀발은 이 무렵 유럽 오케스트라의 표준적인 구성 악기였다. 절대 군주를 상징하였으므로 팀파니와 트럼펫은 대개 함께 연주되었다. 시민혁명으로 절대 왕정이 붕괴했다. 부르주아의 위세는 더욱 높아졌다. 절대 군주를 상징한 트럼펫의 지위도 오케스트라 내에서 함께 낮아졌다. 그러다 고전주의 음악에서는 트럼펫은 아예 뒷방 처지로 전락했다. 늘 함께 연주된 트럼펫이 지위를 상실하자 팀파니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모차르트 교향곡에서 이 두 악기는 아예 방출되었다. 팀파니는 맘보 재즈의 일종인 쿠바의 차차차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유럽의 궁정에서 퇴출당한 악기가 카리브 음악에서 되살아났다.

매거진의 이전글9. 오를레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