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07 코드 누아르

by 조이진
루이 14세가 만든 코드 누아르. 피부색에 따라 처벌 조항이 달랐다. 유럽과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의 표준이 되었다.

코드 누아르

루이 14세가 생 도맹그 흑인 노예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코드 누아르Code Noir는 흑인 법 또는 유색인 법으로 불린다. 콜베르가 기획한 프랑스 식민제국의 노예제도다. 노예제도를 운용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식민지에서 노예제 관리를 위한 법을 만들었는데 대개는 콜베르의 코드 누아르를 본받았다. 코드 누아르는 100% 백인이 아닌 자는 유색인이고, 유색인은 곧 노예로 간주했다. 순종 백인이 아닌 자들을 분류하고 법적 지위를 제한하며 색깔에 따라 형벌을 체계화하는 것이 코드 누아르의 목적이었다. 흑인 법은 유색인 노예에 대한 노예주의 의무도 규정했다. 의무는 하나 뿐이었는데, 오직 백인 기독교인만이 노예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사벨라가 유대인을 이베리아에서 축출할 때 많은 유대인이 네덜란드로 이주했는데, 그들이 네덜란드의 상업을 부흥시켰고, 카리브와 아마존의 네덜란드 식민지에도 유대인 노예주가 많았다. 그러므로 프랑스 식민지 생 도맹그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이 법률에는 노예의 신분이 명확히 규정되었다. 법률에 따르면 노예는 자연적으로는 백인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민법상으로는 사물인 동산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이나 부동산, 사업체에 부속된 농장을 사고팔 때 노예는 농장 안의 나무와 다를 바 없이 간주했다. 이 법은 고대 로마법에 기본을 두되 프랑스 식민지 카리브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예제의 관행을 조합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왕의 명령 없이는 노예를 고문하거나 손발을 절단하지 못하게 했다. 돈이 있는 노예는 자유를 살 수도 있게 했다. 자유가 된 흑인은 자유 백인과 같게 책임과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노예에게 최악의 형벌을 금하게 했고, 섬에서 자유 흑인 인구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도 생 도맹그에서 노예에 대한 처우가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손발을 자르는 형벌 대신 생매장은 할 수 있었다. 말라리아로 악명 높은 습지로 내쫓는 형벌도 있었다. 이것이 인종, 노예에 관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문서다. 유색인으로 태어난 자의 뿌리를 따지는데 아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피부색에 따라 노예 등급이 결정되었다.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의 아이를 낳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백인이 흑인 노예를 다루는 처우와 처벌도 대개 생 도맹그에서 루이 14세가 만든 코드 누아르에 원형을 두고 있다. 노예는 오직 가톨릭만을 믿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신교도 유대교도 허용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전통 종교도 철저하게 금지했다. 만일 노예가 이교도의 종교를 믿는다면 노예는 물론이고 그것을 허락한 주인까지도 처벌할 수 있었다. 주인은 벌금으로 설탕 2,000파운드를 부과받았다. 이 법안은 노예의 행동을 가혹하게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 주인이 다른 노예들끼리는 서로 모여서는 안 되었다. 한 달 동안 일하지 않은 노예라면 귀를 자르고 벌겋게 불에 달군 낙인을 찍어 반항하는 기질을 가진 노예라는 표식으로 삼았다. 그러고도 또 한 달 동안 일하지 않은 노예라면 이번에는 햄스트링을 잘랐고 두 번째 낙인을 찍었다. 세 번째에 또 낙인을 찍을 일이 생기면 낙인을 찍지 않되 곧바로 사형시켰다. 도망 노예를 숨겨준 자유 흑인은 노예 주인에게 몰매를 맞은 후 하루에 300파운드의 설탕으로 갚아줘야 했다.


모로 드 생메리Moreau de Saint-Méry는 프랑스 프리메이슨 회원이자 계몽주의자였다. 계몽주의는 절대군주제를 반대하고 교회보다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종교적 관용을 중시한다는 사조였다. 인간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자유와 박애를 추구한다고 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에 계몽주의자 모로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물을 발표했다. 생 도맹그에서 노예 인종 분류를 체계화하고 세분화한 논문이 그것이었다. 그의 논문은 계몽주의 사상의 중요한 축인 인종 이론에 이정표가 되었다. 이론의 목표는 생 도맹그의 노예들을 피부색에 따라 체계적으로 등급을 구분하는 데 있었다. 아메리카에서 노예제도를 시행한 뒤로 노예들은 그 피부색이 복잡해졌다. 유럽의 식민군들이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원주민을 겁탈해 메스티소를 낳았고, 흑인 남자들은 혼인할 흑인 여자가 부족했으므로 또 메스티소를 강간했다. 백인 남자들은 가정부 흑인 여자를 강간해 아이를 낳았다. 조상을 알 수 있는 경우는 7대 조상의 피부까지 따졌다. 7대 조상 뿌리까지 따져서 어떤 피가 섞였는지에 따라서 노예에 카스트를 매겼다.

Moreau_Saint-Mery02.jpg 노예제 개선에 반대한 프랑스 계몽주의자 모로 드 생메리. 그가 유색인들을 피부색에 따라 128 등급으로 구분했다.

가령 사크트라sacatra는 조상 8명 가운데 7명이 흑인이고 1명이 백인인 자를 가리키는 카스트 용어다. 워낙 강간, 사생아가 많다 보니 뿌리를 따지기도 힘들었다. 모로 드 생메리 이전까지는 백인 아니면 혼혈Sang mêlé 2가지만으로 구분했다. 수수 유럽인이 아니면 모두 혼혈인인 셈이다. 계몽주의자 모로 드 생메리가 유색인의 피부색을 살펴볼 신체 128곳을 정했다. 포인트마다 색깔을 자신이 만든 색조표에 따라 흑과 백으로 구분했다. 애매한 경우는 ‘뉘앙스’에 따랐다. 128곳의 신체 지점의 흑백 점수에 따라 9개 등급으로 노예를 나누었다. 인종주의자들은 피부의 색깔에 따라 인종의 등급도 9등급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9단계 유색인 분류표 한가운데가 물라토다. 셰이드 상으로 물라토는 128곳 중 64점이 화이트, 64점이 블랙인 경우다. 쿼테론quarteron은 3/4인 71~96곳이 화이트, 1/4인 32~57곳이 블랙이다. 셰이드에서 맨 마지막 칸은 1/128이 블랙, 127/128이 화이트인 경우다. 이 혁신적인 계몽주의자는 이 경우만을 상멜레라고 했다. 그러니까 100% 순종 백인을 제외하면 모두 유색인 상멜레였고 노예 삼을 수 있었다. 이것이 유럽 기독교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루이의 땅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루이지애나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러므로 루이 14세가 만든 생 도밍그의 코드 누아르가 루이지애나에서도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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