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08 다박고

by 조이진

다박고

스페인은 오직 황금에만 집중했다. 멕시코와 페루에서 금은이 쏟아졌다. 스페인은 그 많은 황금을 모두 전쟁에 탕진했다. 한때 가장 넓은 식민지를 가졌지만, 오늘날 스페인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다. 스페인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처럼 서인도 척식회사 같은 상업 기구도 설치하지 않았다. 황금을 쓰기만 할 뿐 돈을 버는 데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당시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항구였던 아바나는 작은 배에서 큰 배로 짐을 옮겨 싣는 화물 터미널일 뿐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서야 스페인도 비로소 쿠바에서 상업적 농업을 시작했다. 아이티에서 프랑스가 하는 것을 뉘 늦게라도 보고 배웠다. 작목은 설탕과 커피였다. 여기에 쿠바 다이노가 종교의식으로 함께 모여 피우던 다박고 담배 농사도 본격 시작되었다. 아직 핸드롤 시가가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유럽에서는 가루를 빻아 코담배나 파이프 담배로 피우고 있었다. 질 좋은 담뱃잎은 카리브해에서도 쿠바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다. 토양 탓이다. 쿠바섬에서도 오직 서부 끄트머리인 비냘레스 일대만이 담배 농사에 무척 적합한 토양이어서 오늘날에도 쿠바 담배 산업의 중심지다. 1740년에야 스페인 왕실은 콤파니아 레알 즉 황제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무적함대는 이미 소멸했다. 함대가 없으면 대서양을 건너 세비야에 이르는 항로 보호와 화물 운송은 어렵다. 그러므로 스페인은 이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황제를 대주주로 스페인과 쿠바의 자본가들이 투자했다. 사업 목적은 담뱃잎의 수출과 가격 통제였다. 민간의 배가 쿠바에서 스페인으로 다박고를 운송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콤파니아 레알만이 쿠바섬으로 가는 물자를 수송할 수 있었다. 여전히 쿠바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물품을 스페인에서만 구해야 했다. 쿠바는 콜럼버스가 침공한 이래로 늘 물자가 귀했다. 콤파니아 레알이 공급을 독점하던 시대도 물자가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도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로 물자가 부족하다. 그러나 쿠바 사람들은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다. 500년 동안 결핍에 적응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은밀한 방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 조달한다. 콤파니아 레알이 독점했을 때도 은밀한 방식은 잘 작동했다.

아름다운 비냘레스 풍경. 쿠바에서도 이 지역에서만 질 좋은 담배가 재배된다.


세계가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상업의 시대가 열렸다. 무역은 활발해졌고 유럽과 북미에서 경제가 활발해졌다. 쿠바의 담배 산업도 시장 다각화의 문이 열렸다. 스페인이 핸드롤 시가를 피운 뒤로 유럽에서 쿠바 시가가 대유행이었다. 네덜란드와 독일은 시가를 즐겼다. 영국은 파이프 담배를 즐기다 시가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아직 코담배를 즐겼다. 영국인들을 따라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북미에서도 시가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나라마다 담뱃잎을 수입해서 가공하는 제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담배 농사를 짓는 나라의 가공업자들과 경쟁이 불가피했다. 가공업자들은 자국의 내수용뿐 아니라 수출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자국 담배 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 왕실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첫 무역 장벽이 설치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미국은 한때는 주요 쿠바 담배 수입국이었다.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시가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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