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카리다드

#220 마체테

by 조이진

마체테

마체테Machete는 사탕수수를 베는 벌목 칼이었다. 람보가 베트남 정글에서 나무 덩굴을 쳐낼 때 쓴 칼이 마체테다. 군대에서는 정글도라 부른다. 칼은 두껍고 무거워야 내리치는 힘이 세다. 두꺼운 사탕수수를 내리쳐 베는 마체테는 무겁다. 무거운 칼을 휘 내리치다 보면 자칫 제 정강이나 팔목을 잘랐다. 쿠바 농촌에서는 한쪽 종아리가 없거나 팔이 잘린 사람을 볼 수 있다. 마체테를 휘두르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다. 일꾼들은 마체테를 오른손에 쥐고 낫질하듯 4m가 넘는 사탕수수의 밑동을 내리쳐서 벴다. 한 사람이 밑동을 자르고 지나가면 뒷사람이 윗부분의 덜 익은 가지와 잎사귀를 쳐냈다. 또 다른 한 명은 긴 사탕수수 줄기를 2~3토막으로 나누고 모았다. 수확된 사탕수수를 수레에 실어 제당소로 가져갔고, 공장에서는 컨베이어를 이용해서 사탕수수를 압착 롤러로 밀어 넣어 즙을 짜내었다.

마체테로 사탕수수를 베는 흑인 노예들

자칫 흑인의 팔이 사탕수수와 함께 압착 기계에 끼면 백인 감독관은 단호하게 그 팔을 잘라주었다. 롤러를 돌리기 위해 많은 양의 나무를 태워서 작동하는 증기 엔진을 이용했다. 롤러를 통과해 짓이겨진 사탕수수 찌꺼기를 컨베이어에 실어 내보내면 노예들이 들판에서 햇볕에 바짝 말려 다시 수거해 사탕 즙을 끓이는 연료로 재사용했다. 짠 즙은 큰 저장 통으로 옮겼고, 낮은 온도로 천천히 끓였다. 이 통속에는 사탕 즙뿐 아니라 수수 찌꺼기와 흙먼지도 섞여 있다. 찌꺼기와 흙먼지를 가라앉혀 걸러낸 후에 이제 본격적으로 큰 솥에서 뜨거운 불에 끓였다. 입맛에 맞는 적당한 산도를 내기 위해서 라임을 넣어서 살짝 시큰한 맛을 낸다. 끈적끈적한 조청 상태가 될 때까지 달인 뒤 국자로 다른 가마솥으로 또 옮긴다. 이 가마솥에서 결정 상태인 설탕 가루가 될 때까지 끓인다. 가루가 굳어 다시 덩어리 지지 않도록 끓는 설탕이 다 식을 때까지 큰 주걱으로 휘저어 설탕 가루를 얻었다. 아바나 화이트는 최상급인 100% 순백색 등급의 설탕을 의미한다. 처음 끓여 얻은 설탕으로만 아바나 화이트를 만들 수 있다. 바짝 말린 수숫대만으로는 설탕 제조공정에서 필요로 하는 연료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농장 주위 산에서 나무를 벌목해 끌어와야 했다. 설탕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산림에서 벌목해 와야 했다. 노예들이 나무를 저 날라야 할 거리도 늘어갔다. 아름답다던 쿠바섬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증기 엔진을 돌리기 위해서는 많은 물도 필요했다. 솥에서 끓여지는 물을 대기 위해서 우물을 깊게, 더 깊게 파야 했다. 공장이 가동되는 동시에 노예들은 우물을 팠다. 깊이 120m가 넘는 우물이 흔했다. 가까이 있는 우물이 마르면 새 수맥을 찾아야 했다. 새 우물은 설탕 공장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큰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공장으로 수레에 실어와 거대한 증기 기관을 돌렸다. 매일 그랬다. 설탕을 끓이는 가마만큼 뜨겁게 타는 햇볕은 노예들을 쓰러뜨렸다. 설탕은 유럽을 자본주의로 옮겨가는 증기기관이었다. 그 기관은 검은 노예를 연료로 태웠고 노예무역 거래처를 넓혔다. 설탕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노예 매매 시대를 열었다. 설탕 자본주의는 노예 경제와 함께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본주의는 약탈적이었고, 계급적이었고, 대량 생산과 수익성을 지향했다. 콜럼버스가 처음 카리브에 사탕수수를 심었을 즈음인 16세기 초 영국인 1인당 설탕 소비량은 500g이었다.

설탕을 가공하는 제당소

가격도 무척 비싸 최상위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희소품이었다. 카리브에서 설탕이 대량 생산된 17세기에 2kg, 18세기에는 7kg으로 급증했다. 이제 유럽인들에게 설탕은 사치품, 일상품으로 바뀌었다. 유럽인들이 설탕에 빠져 치아우식증 환자가 많아질수록 카리브의 산들은 벌거숭이로 변해갔다. 충치가 많아진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귀족들을 치료하다 프랑스 의사 피에르 포샤르가 치의학을 발전시켰다. 그가 최초의 치과 의사이자 근대 치의학의 아버지다. 설탕으로 인해 만성질환이 늘어났고 내과를 비롯한 의학도 이때 발전했다. 워털루 전쟁에서 죽은 나폴레옹의 젊은 군사들의 유골들이 치아우식증이 심하게 진행된 채로 발굴되었다. 나폴레옹이 황후의 관을 내린 조세핀은 썩어 흉한 충치를 손수건으로 가렸다.

근대 치의학의 아버지 피에르 포샤르가 발간한 <치과의사>

사탕수수를 기계로 눌러 쥐어짜면 단물이 나왔다. 즙을 불로 끓이고 달이면 조청 상태를 거쳐 설탕이 되었다. 추출액을 증산할 수 있는 압착 기술이 발명되자 설탕 플랜테이션이 대거 늘어났다. 기술의 발달로 오히려 노예가 늘었다. 노예들을 하루 5시간만 재웠다. 플랜테이션 농장마다 200~300명의 노예가 있었다. 해마다 10% 정도의 노예가 죽었다. 농장주들은 플랜테이션에 여성 노예를 들이지 않았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흰 백인 농장주 저택에는 부엌 살림할 피부 검은 여자 노예 몇이 있었다. 플랜테이션에 어린아이들이라고는 3~4명 정도뿐이었다. 성비 불균형은 노예가 자연 증가할 수 없는 이유였다. 우기가 끝나는 11월부터 우기가 새로 시작하는 5월까지 건기가 노예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시기다. 이 시기를 견뎌내는 힘은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는 흑인들의 독특한 심성에서 나왔다. 그런 생각이 지옥의 노동을 견디게 했다. 농사철이 지나면 노동강도가 한결 줄어들었다. 들판의 풀을 베고 산을 벌목하여 땔감을 끌어오는 따위의 일을 했다.


+ 디자인 분야에서 '아바나 화이트'는 100% 백색을 가리키는 색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