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로톤다
로톤다
아메리카는 둘이다. 하나는 북미, 중미, 남미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다른 하나는 미국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아메리카를 미국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미국인들이다. <컬럼비아여 영원하여라 Hail, Columbia>는 미국 부통령이 입장할 때 연주하는 의전 곡이다. 지금의 미국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인 1931년까지는 이 곡이 미국 국가였다. 여기서 ‘영원하여라’라는 컬럼비아는 콜럼버스를 가리킨다. 컬럼비아는 콜럼버스의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 표기다. 그러니까 미국은 그들의 애국가를 콜럼버스에게 헌정했다. 미국 수도 이름 워싱턴 D.C. District of Columbia도 조지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합쳐 만든 명칭이다. 미국 국회의사당 로톤다 홀에는 <콜럼버스의 상륙Landing of Columbus>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오른쪽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벌거벗은 채로 엎드려 큰절하고 있다. 그림 속 원주민은 다이노들이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까스티야 레온 왕실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 또 다른 깃발에는 철십자 크로스 파테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실제는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를 상징하는 알파벳 머리글자가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그림으로 보면 미국 역사의 시작은 스페인의 침략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된다. 미국 교과서는 미국의 역사를 이 그림처럼 가르친다. 미국 학생들은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사람들이 처음 밟은 땅 플리머스 바위 기념관에서 ‘이 돌이 콜럼버스가 처음 상륙해서 최초로 밟았다는 그 바위지?’라고 서로 묻는다. 그러면서도 또 미국인들은 1620년에 필그림 파더스가 북미에 도착한 일에서 미국의 역사가 시작한다고 여긴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플리머스 바위에 처음 발을 디딘 자들은 세비야에서 출항한 콜럼버스가 아니라, 영국 플리머스항에서 출항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라는 소수의 영국인 기독교도들이었다. 분명히 콜럼버스는 카리브 섬 말고는, 특히 미국 땅에는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미국의 역사는 콜럼버스와는 무관하다. 미국은 1492년과 1620년의 단순한 차이마저 식별하지 못한다. 128년이나 차이 나는 중요한 두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뒤섞어 혼란스러워한다. 1620년의 일에 대한 기억도 그나마 틀렸다. 1620년에 필그림 파더스들이 도착하기 전에 벌써 영국인과 네덜란드인들이 버지니아 여러 곳에 이주해 작은 마을을 이뤄 살고 있었다. 또 그들보다 훨씬 전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맞았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020년은 미국 역사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를 다시 시작한 해다. 미국에서 흑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보스턴에서는 콜럼버스의 동상에 밧줄이 걸렸다. 목은 잘려 짓밟혔고, 그의 동상은 호수 속으로 처박혔다. 왜곡된 미국 역사를 새롭게 보려는 노력은 시작되었다. 콜럼버스는 미국이라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발을 딛기 훨씬 전부터 카리브라는 아메리카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전형적인 침략자였다. 그리고 학살자였다. 그때 아메리카에는 유럽 전체 인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세비야보다 몇 배나 더 큰 도시가 있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오늘날의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는 옥수수, 감자 같은 작물을 콜럼버스가 침공하기 8,000년 전부터 종자를 개량해 농업 혁명을 이룬 대단한 과학자들이었다. 각종 전염병과 기근으로 굶주려 몸이 허약했던 유럽인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도 훨씬 크고 건강했다. 그들은 그림과 글로 역사책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조상들의 역사를 가르쳤다. 카누를 타고 큰 물을 건넜고, 흰 눈으로 덮인 큰 산 태백tepec을 지나 대륙을 건너온 맥이족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자손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자신들의 고을 이름을 맥이코아Mexico라고 했다. 라스 카사스는 다이노들이 유럽인들이 믿는 기독교의 창세 교리와 매우 비슷한 종교를 믿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다이노들은 오래전에 전해 내려온 창세 신화와 민족의 기원을 기억하고 하늘에 있는 아버지에게 제를 지냈다. 콜럼버스가 침공하기 수천 년 전부터 해왔던 일이었다. 이런 많은 기억을 미국이라는 아메리카는 기억하지 않는다.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아메리카 국가들은 아프게 기억하는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 이들은 해태이와 다이노,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항해 투쟁한 조상들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미국이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역사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쓰는 미국의 역사는 왜 또 다른 아메리카가 기억하는 역사와 그렇게도 다른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미국이라는 아메리카가 왜곡한 역사를 알고 있고, 어쩌다 그들처럼 우리마저도 혼란스러워하는가.
1620년에 플리머스 바위를 밟은 자들은 대영제국 여왕 폐하의 신민들이었다. 영연방 왕국의 국가인 <신이여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애국가로 불렀던 자들이었다. 미국 역사가 1620년에 시작한다고 하면 미국의 역사는 대영제국의 식민지에서 시작하게 된다. 미국 건국 초기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 점이 싫었다. 대영제국과 여왕이 은혜를 베풀기 전부터 미국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역사로 꾸미고 싶어 했다. 그래야 영국의 식민지 역사를 배척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성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쿠바가 아니라 버지니아주 플리머스 바위를 밟았다고 역사를 왜곡해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로톤다 홀에 <콜럼버스의 상륙>이라는 그림이 걸려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콜럼버스는 버지니아의 바위는커녕 플로리다 해안의 모래밭에도 발끝을 닿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멕시코에도 베네수엘라에도 그는 발을 댄 적이 없다. 그가 도달한 곳은 카리브의 섬들뿐이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제국주의자들은 지금까지도 역사를 왜곡한다. 역사를 왜곡한 자들은 침략한 자들이었거나 제국주의를 추진하는 자들이다. 미국이 1492년에 집착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은 1492년의 역사를 미국의 역사로 삼으려 한다. 그럼으로써 쿠바와 히스파니올라 같은 카리브의 역사를 미국 역사의 일부로 포함하려는 의도다. 그렇게 해서 미국은 이미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로 차지한 전적이 있다. 어디 카리브의 섬뿐이겠는가. 미국은 1492년 이래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본디 하나의 땅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를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이유도, 로톤다 홀에 <콜럼버스의 상륙>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걸린 이유도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하나의 아메리카', '미국의 아메리카'라고 인식시키고 싶어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몰락한 스페인이 게워놓은 아메리카 땅을 케이크 먹듯이 한 입 한 입 미국이 먹어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식 제국주의를 가장 먼저 제창한 미국 제국주의의 아버지다. 스페인 제국주의가 힘이 빠지자 미국 제국주의가 쿠바와 카리브를 노렸다. 쿠바로서는 승냥이를 피하니 다시 이리떼를 만난 격이다. 미국 지금껏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하는 이유다.
+ 영국인들이 처음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곳이 플리머스인 이유는 그들이 영국 섬을 떠난 곳의 지명이 플리머스이기 때문이다. 플리머스Plymouth는 영국 섬 맨 아래 항구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