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콘트라단자
콘트라단자
가문은 끊어졌다. 압스부르고의 마지막 왕은 온갖 유전병을 앓았다. 가문의 오랜 근친 정략혼의 대가였다. 이제 스페인 왕위를 누가 차지할지 거래가 오고 갔다. 루이 14세의 공식 명칭은 루이 드 프랑스-나바르였다. 프랑스의 국왕이며 나바라의 국왕이기도 했다. 나바라는 이베리아 북부 여러 바스크 왕국의 종주국이었으므로 스페인에서는 상징성이 큰 왕국이었다. 또 루이 14세 부인이 스페인 왕실 핏줄이라는 점도 명분이 되었다.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가의 심해진 근친혼 유전병을 간파하여 곧 대가 끊길 것을 예상한 루이 14세가 스페인 공주를 아내로 들였다. 결국 압스부르고의 마지막 왕은 죽기 전에 루이 14세의 손자를 스페인 후계 왕으로 지명했다. 루이 14세의 담대한 포부 대로 일은 이루어졌다. 프랑스 루이 가문은 부르봉 가문이다. 스페인에서도 부르봉 가문의 시대가 열렸다. 루이 14세는 뒷날 자신의 후계자로도 스페인 왕이 된 손자를 지명했다. 손자를 구심점으로 프랑스가 스페인을 병합하려는 의도였다. 이때부터 스페인은 프랑스와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전쟁을 좋아한 스페인은 부르봉 가문이 된 뒤로는 늘 프랑스와 한 짝이 되어 전쟁했다. 상대방은 프랑스의 숙적 영국이었다.
부르봉 가문이 스페인 왕이 되자 스페인에 프랑스 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프랑스의 부르봉 귀족들이 즐겨 추는 콩트르당스는 스페인에서는 남녀가 마주 보고 춤을 춘다는 뜻의 콘트라단자contradanza가 되었다. 콘트라단자는 짝짓기에 좋은 춤이었다. 가면을 쓰고 춤을 추니 남녀들은 더 대담해졌다. 가면무도회에서 콘트라단자는 특히 인기 있었다. 본디 이 춤은 스페인에서 발아한 춤이었다. 그러니 스페인 사람들이 이 춤을 더욱 반겼다. 아바나는 세비야와 한 묶음. 스페인에서 유행한 춤은 아바나에서도 금세 인기가 높았다. 춤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쿠바 사람들이 콘트라단자에 푹 빠졌다. 때마침 생 도맹그에서 프랑스인들과 흑인 노예들이 산티아고 데 쿠바로 쏟아져 들어왔다. 춤과 음악이 섞였다. 1755년에 쿠바에서 발간된 춤 교본에는 18개 멜로디에 맞는 콘트라단자 발 동작이 설명되었다. 악보는 기록되지 않았어도 교본에는 어떤 리듬이 기록되어 있었다. 훗날 탱고라는 이름을 얻은 리듬이다. 그래서 음악학자들은 스페인에서 쿠바로 들어간 콘트라단자가 아바나의 흑인들을 만나 탱고 리듬이 태어났다고 본다. 특히 콩고 출신 흑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리듬이 아바나에서 콘트라단자와 접합하여 탱고 춤과 음악이 나왔다고 본다. 프랑스 콩트르당스도 탱고에 유전자를 남겼다. 영국도 쿠바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 영국이 쿠바를 지배한 11개월 동안 영국 컨트리 댄스가 아바나에 들어왔다. 영국이 쿠바를 점령한 1762년에 런던에서 발행된 잡지는 탱고 리듬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기사와 함께 실린 악보는 확실한 탱고 리듬이었다. 아바나에 음악이 들어오는 루트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 아프리카 말고도 또 하나 뉴올리언스 루트도 있었다. 1803년 미국이 루이지애나를 사들였을 때 많은 스페인 사람이 쿠바로 되돌아왔다. 루이지애나에는 생 도맹그에서 노예의 난을 피해 이주한 프랑스계 사람들이 많았다. 쿠바로 되돌아온 스페인 사람들은 뉴올리언스에서 프랑스 스타일의 생 도맹그 춤과 음악을 경험해 알고 있었다. 아바나에는 다이노 음악의 피도 흐르고 있었다. 물길 따라 사람 따라 세상의 모든 음악이 아메리카의 열쇠 아바나만으로 흘러 들어왔고, 아바나는 피부색 다른 인간들의 음악을 한 데로 모아 담는 깔때기가 되었다. 섞고 녹이니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도가니가 되었다.
탱고 리듬의 콘트라단자가 19세기 아바나의 댄스홀을 주도했다. 루이 14세가 즐겼던 프랑스 콩트르당스 스타일의 음악과 춤은 아바나에서 다른 음악과 춤으로 거듭났다. 아바나에서는 뮤지션이 흑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리듬을 아바나 흑인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다른 춤, 다른 음악이 되었다. 쿠바에서 콘트라단자는 2/4박자 또는 6/8박자가 많았다. 둘 다 빠르지만 2/4박자가 더 빠르다. 쿠바는 빠른 박자를 좋아했다. 흑인의 발 움직임은 그렇게 빠른 박자에 잘 어울렸다. 또 흑인이라야 빠른 박자에 스텝을 맞출 수 있었다. 그들의 악보에는 단선율 멜로디가 그려져 있었다. 기호로 형식화된 악보는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바나 뮤지션들은 즉흥적이었고 악보에 그려지지 않은 음표마저 읽어낼 수 있었다. 텍스트 사이에 숨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눈이 있었다. 흥과 감이라는 눈으로 콘텍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음표를 읽어냈다. 흑인들이 해석해 낸 악보는 언어나 문자, 음표로 다시 기록하기는 어려웠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이어서 매번 똑같이 연주하기도 어려웠다. 흑인들의 콘트라단자 악보에서 중요한 리듬 마디에는 2/4박자가 그려져 있다. 이 리듬이 탱고다. 아바나에서 시작된 이 한마디 리듬이 세계의 음악을 휘어잡고 리듬의 왕이 되었다. 이 리듬 마디를 쿠바에서는 그때 탱고라 불렀다.
2/4박자 탱고 악보. 쿠바 콘트라 단자 리듬에 최초로 기록되었다. 2/4박자 탱고 악보. 쿠바 콘트라 단자 리듬에 최초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