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탱고

#243 카우디요

by 조이진

카우디요

설탕이 가져다준 부가 아바나 만에 넘실거렸다. 그럴 때 타콘Miguel Tacón장군이 쿠바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4년간 재임했지만, 아바나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바나의 모습이 타콘 재임 동안에 만들어졌다. 그는 난폭한 철권 통치자였다. 가장 먼저 타콘은 도박장 언저리에서 부랑자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1만 명이 넘는다고 추산했다. 이들을 일거에 잡아들여 집단 교화 시설에 수용해 버렸다. 일하지 않고 빈둥대는 인간쓰레기들과 범죄자를 교화시킨다는 명분이었다. 이 무렵 쿠바 지식사회에서는 스페인 저항운동의 사상적 배경인 라틴 아메리카 민족주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설탕으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스페인이 가져가는 데 대한 이의제기가 핵심이었다. 타콘의 시선으로 이런 생각을 지닌 지식인들이야말로 인간쓰레기들이었다. 큰길에 가로등을 설치해서 밤거리를 밝게 했고 지역마다 자경단을 조직하고 권한을 주었다. 올드 아바나 성 밖에 널리 퍼져있는 우범 지역에 경찰을 보내 단속했다.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교도소도 만들었다. 피부색에 따라 수감 공간도 다르게 했다. 인종별로 나누어 가뒀던 미국방식을 본떴다. 미국처럼 악질범은 독방에 가뒀다. 스페인 통치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이 독방에 투옥되었다. 타콘이 통치하는 동안 네그로 쿠로negros curros가 거리에서 사라졌다. 16세기부터 허리춤은 달라붙고 바지 아랫단 통이 넓은 부츠컷 나팔바지에 긴소매 흰옷을 입고 큰 차양 달린 모자를 쓴 아바나의 골목길 멋쟁이 자유 흑인들 하바네로가 사라졌다. 네그로 쿠로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지역에서 팔려 온 칼라바르Calabar 흑인들이 아바나 골목길을 대체했다. 이들을 냐니고ñañigos라 했다. 이들은 네그로 쿠로와는 다른 성향이 있었다. 냐니고들은 칼라바르 출신끼리 조직을 만들었다. 타콘은 길을 포장했다. 지하 운하를 파고 하수도를 설치했다. 쓰레기 폐기장도 만들었다. 위생이 개선되었다. 녹화사업으로 도시가 달라졌다.

미구엘 타콘. 1834~1838년에 쿠바 총독이었다.

스페인어 카우디요caudillo는 군인 신분으로 정치권력을 지닌 지도자를 말한다. 군대를 권력 기반으로 하는 정치군인을 말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 타콘을 모방한 군부 독재자가 줄을 이었다. 쿠바에서는 마차도와 바티스타가 대표적이고, 라틴 아메리카에는 파나마의 노리에가, 칠레의 피노체트 등이 대표적인 정치군인들이다. 타콘이 대대적인 공공건물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벌였다. 도시를 정화하는 여러 사업의 하나였다. 타콘은 이웃 미국을 무척 좋아했다. 그 무렵 미국 워싱턴에 새로 지어진 국회의사당 건물도 부러웠다. 그가 네오클레식 건축 양식으로 갓 지어진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복제해 짓기로 했고 건축 계획을 완성했다. 워싱턴의 국회의사당과 똑같이 짓되 아바나의 엘 카피톨리오를 1m 너 높게, 1m 더 넓게, 1m 더 길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가 백작 작위를 받기 위해 일찍 스페인으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이 건물은 착공되지 못했다. 엘 카피톨리오El Capitolio는 그를 롤 모델로 삼은 또 다른 카우디요 마차도에 의해 1926년부터 3년간 지어졌다. 타콘은 건축 방식마저도 미국식을 선망했다. 미국은 워싱턴 의사당을 흑인과 녹화사업 대상자를 강제 노역하여 지었다. 노무비가 들지 않았다. 타콘이 설계하고 마차도가 지은 센트로 아바나에 있는 엘 카피톨리오의 한 중심이 지적 거리의 기준점이 되었다.

Teatro-tacon._Havana,_Cuba (1).jpg

+ 카우디요는 스페인어로 '총통'을 가리키는 말로 군최고사령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군부독재자 프랑코 총독의 호칭이 엘 카우디요El Caudillo였다. 카우디요 타콘은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을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군부독재자의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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