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시티은행
시티은행
미국과 쿠바는 자유무역 협정으로 더욱 한 덩이가 되었다. 이미 쿠바가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스페인에 수출하는 물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미국도 쿠바는 3번째로 큰 교역 상대였다. 그들 교역에서 가장 비중이 큰 상품은 설탕이었고 설탕 생산은 노예 없이는 불가능했다. 미국으로 설탕을 실어 보낸 배가 되돌아올 때는 럭셔리 상품부터 가공식품까지 실어 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미국 동부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때 대거 생겨났다. 보석 회사 티파니도 그때 생겼다. 기계 발달로 설탕 생산성이 높아졌다. 사탕수수를 설탕으로 바꾸는 기계 수입도 급증했다. 미국이 쿠바에 기계설비만 판 것은 아니다. 쿠바가 필요로 하는 노예도 대부분 미국이 공급했다. 미국 법은 인신을 매매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한다는 법을 갖고 있었다. 노예를 미국에 들여오는 것도 위법이었다. 스페인이 영국에 맺은 조약만으로도 쿠바에 노예를 들여오는 행위는 위법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쿠바에는 막대한 숫자의 흑인 노예들이 수입되었고 모두 미국인들이 주도한 거래였다. 쿠바 앞바다에 떠 있는 모든 노예선에는 미국 국기가 펄럭였다. 콜럼버스 시대부터 쿠바에 350년간 노예가 수입되었다. 그 삼분의 이가 스페인이 노예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영국과 조약을 체결한 다음 미국에 의해 수입되었다. 쿠바로 실어 온 노예의 63%를 미국 볼티모어 조선소에서 만든 배로 날랐다. 미국 조선업의 상징이었던 볼티모어를 쿠바 노예 거래가 만들어주었다. 영국에서도 그랬듯이 해운업은 보험업을 동반했다. 노예무역을 지배했던 영국에서 보험금융업이 먼저 발달했듯이 뉴욕에서도 보험회사들이 급성장했다. 뉴욕, 보스턴, 볼티모어, 브리스틀, 로드아일랜드, 매사추세츠에서 출발한 배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싣고 아바나와 마탄사스, 카르데나스, 트리니다드 같은 쿠바 곳곳에 노예를 하역했다. 브라질 노예의 대부분이 이때 하역되었다. 사람을 팔면 이문이 컸다. 노예만 빼고 이 업종에 관련된 자들은 모두 크게 재미를 봤다. 미국 로펌은 아바나가 어떻게 하면 법을 어기고 노예무역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지 자문하고 돈을 벌었다. 자문하던 미국 법률가가 스스로 쿠바에 플랜테이션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드울프 같은 상원의원은 불법으로 규정된 뒤에도 자신의 노예선을 계속 출항시켰다. 그런 상원의원이 앞장서 법을 무력화하니 노예 금지법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번 막대한 돈을 미국 사업가들이 금융업에 투자했다. 노예 사업으로 번 돈이 미국의 대형 보험회사, 투자회사, 은행 창업의 종잣돈이었다. 미국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매사추세츠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조성된 미국의 제조업 벨트도 이때 형성되었다. 쿠바산 담뱃잎을 수입하여 미국에서 가공하는 제조업도 활발했다. 쿠바에서 사탕수수 갱엿을 수입하여 럼주 만드는 주조회사도 많아졌다. 쿠바에서 비정제당인 흑설탕 상태로 수입한 뒤 뉴욕에서 정제하여 백설탕을 생산했다. 여기에 미국식으로 캐러멜시럽을 첨가해 가열하면 다시 흑설탕이 되었다. 흰 설탕이든 검은 설탕이든 제조는 미국에서 했고 수출도 했다. 스페인에는 설탕 정제 공장도 없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설탕 가격은 쿠바에서 거래되는 노예 가격의 변동과 정확히 연동되었다. 이때 선물 투자 금융 기법도 개발되었다. 미국에서 다음 해에 생산될 면화를 대상으로 투자해 왔던 금융자본은 쿠바에서 다음 해 생산될 설탕을 대상으로 선물 투자했다. 플랜테이션 노예주들은 다음 해에 생산될 설탕을 담보로 신용 대출을 받은 돈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 오거나 기계를 샀다. 미국 투자은행들이 쿠바의 플랜테이션을 사들여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다는 개념, 수직계열화한다는 개념이 이때 처음 생겨났다. 쿠바 설탕으로 벌어들인 돈이 미국의 석탄 광산, 철강, 제조, 철도, 은행 같은 산업들에 투자되었다.
뉴욕의 설탕 중간상 모세 타일러는 쿠바 거래 전문가였다. 쿠바 농장주의 설탕을 사주고 자금을 빌려주기도 하다 투자까지 해주면서 큰돈을 벌었다. 설탕 거래가 핵심 수입원이기는 해도 대출과 투자가 더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그가 설립한 시티은행은 철과 석탄에 투자하더니 공황 때는 파산한 철도도 사들였다. 쿠바의 노예와 설탕에 투자해 거둔 이익이 자금원이었다. 노예들의 피 값은 프린스턴, 하버드 같은 미국 교육에도 투자되었고 대학들은 노예제를 옹위했다.
미국 자본주의와 경쟁력은 미국과 쿠바에서 흑인 노예를 착취한 이익을 토대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