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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Feb 25. 2024

15. 그란마

#345 누에바 트로바

누에바 트로바

  쿠바 혁명이 일어났지만 쿠바에서 음악은 여전히 정치성과는 무관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 쿠바에서 미국의 피그만 침략 사건은 음악에서 새로운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유행한 누에바 칸시온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피그만 사건을 계기로 혁명을 지지하고 주권국으로서의 쿠바의 독립과 자주성과 같은 것을 노래하는 정치성이 담긴 곡들을 쏟아냈다.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속했던 4인조 여성 보컬 그룹은 당시 멕시코에서 크게 유행하던 전통민요 <라 밤바La Bamba>를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가사로 바꿔 노래를 불었다. 그런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은 여러 축제 행사장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혁명 이전에 음란하고 외설스러운 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나이트클럽 <트로피카나>의 무대에서도 사회주의를 주제로 하는 토크쇼가 무대에 올려졌다. 여러 인종이 섞인 공연단도 피그만 침공 사건 이후에 무대에 섰다. 바티스타 시절에는 결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피그만 침공은 쿠바에 여러 중요한 가치를 가져다주었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자극과 영감을 자극해 혁명 이후의 쿠바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되었다.      

쿠바 혁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쿠바의 새 노래 운동 누에바 트로바 

1890년 무렵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에 참여했던 신도 가레이 같은 트로바도르들이 부른 노래를 트로바라고 불렀다. 1950년대까지 트로바는 도시에 사는 문맹에 가까운 직업군인이나 시가 공장 노동자, 양복점 직원, 이발사들 같은 직업에 종사한 흑인들과 물라토들의 음악이었다. 반면에 부유한 지배층 크리오요 쿠바인들이나 쿠바에 여행 온 미국인들은 사교계에서 미국재즈를 즐겼다. 1950년대에 쿠바의 로맨틱한 노래 장르인 볼레로와  칸시온canción의 전통에 미국식 재즈를 덧입힌 쿠바식 재즈 스타일이 필린filin이다. 필린 레퍼토리가 ‘새 노래’ 누에바 트로바가 나오기 전의 ‘옛 노래’ 비에하 트로바의 대표적인 음악이다. 비에하 트로바는 듣기 위한 노래가 춤을 추기 위한 노래였다. 그러나 누에바 트로바는 춤을 추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듣기 위한 노래였다. 그런 것은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악기는 기타였고 가사의 문학성과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은 12~3세기 스페인 음악에서 나타났던 트로바도르의 특징과 닮았다.  누에바 트로바는 혁명이 일어난 1959년에 맨 처음 나왔고 혁명 정부는 정치, 사회 개혁과 혁명을 열망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주축이 된 이 노래들이 사랑을 노래한 볼레로 스타일의 비에하 트로바와 완전히 다르게 혁명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하는 새로운 분위기의 노랫말로 혁명 이전의 노래들과 완전히 다른 내용의 음악이므로 혁명적인 노래들이라며 환영했다. 젊은 시절 콤파이 세군도가 속했던 남성 듀오 로스 콤파드레스Los Compadres는 피델 카스트로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생애를 기린 노래들을 불렀고, 노래로 혁명 정부의 문맹 퇴치와 주택개선 사업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누에바 트로바 운동을 이끈 파블로 밀라네스의 <욜란다>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곡이다. 이 곡에서 욜란다는 한 여인자 쿠바 혁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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