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미니 카니스

#060. 엔코미엔다

by 조이진

엔코미엔다

사람들은 대개 씨족끼리 살다가 몇 개의 씨족이 뭉쳐서 군장 사회Chiefdom을 이룬다. 그런 다음 군장들끼리 뭉쳐서 군장국가를 형성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바스크 사람들은 군장국가를 -코ko라 불렀다. 다른 바스크 군장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라곤도 여러 씨족 군장이 연합해서 세운 고을이었다. 이들은 동유럽에서 밝족 유스Eus가 해체된 뒤 유민들이 피레네를 타고 이주해 와서 먼저 살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했다. 이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피레네로 들어온 현대 바스크족의 조상이다. 이들이 동유럽에서 피레네로 이동하던 7, 8세기에는 동유럽까지 기독교가 널리 퍼졌었다. 밝족 유스들은 동유럽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채로 피레네로 들어왔다. 레콘키스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035년에 나바라의 왕 산초 3세가 죽었을 때 나바라 왕국은 4개의 지역으로 쪼개져 상속되었다. 첫 번째는 이루냐 또는 팜플로나가 있는 바스크 종주국 나바라, 두 번째는 카스티야, 세 번째는 소브라베Sobrabe, 마지막 하나가 아라곤이다. 아라곤을 상속받은 아들 라미로Ramiro는 서자였으므로 바스크 전통에서 상속권은 없었지만, 산초 3세는 그를 아꼈다. 라미로가 소브라베를 상속한 아들을 전쟁에서 죽이고 그 땅을 차지했다. 전쟁은 세력이다. 세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합한 다른 씨족 군장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아라곤은 영토를 넓혀가면서 정복에 대한 성과보수로 귀족에게 땅을 배정하고 자치권을 인정했다. 이것이 엔코미엔다Encomienda의 유래다. 봉건 영주 제도와 비슷하다. 엔코미엔다는 레콘키스타를 치르는 스페인에서 모슬렘과 싸워야 할 기독교 기사들의 동기가 되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전투란 귀족으로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디딤돌이었다. 왕국의 형성 과정에서 귀족의 세력이 유독 강했던 아라곤에서는 왕의 군대도 귀족의 엔코미엔다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자치권이 강했다. 사실상 여러 씨족끼리 느슨하게 연합한 정치체제에 가까웠다. 어린 페르디난드는 취약한 왕권이 뼈아팠다. 그가 종교경찰인 사제단 역할을 눈여겨 보아두었다. 아라곤의 어린 왕자가 어른이 되어 카스티야 국왕의 남편이 되었을 때 종교재판과 경찰 사제단이 눈부시게 맹활약했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국왕 부부가 유럽에서 절대군주제 시대를 가장 먼저 열어젖힌 것은 페르디난드의 어린 시절 경험 탓도 있었다. 콜럼버스가 카리브와 아메리카를 침공한 뒤 스페인은 정복자들에게 엔코미엔다를 배정하고 자치권을 주었다. 정복자들은 엔코미엔다에 소속된 원주민들을 노예 삼아 착취했고, 이른 시간에 원주민들이 소멸하였다.

스페인 정복자가 엔코미엔다의 멕시코 원주민을 학대했다./위키피디아

+ 소브라베는 ‘나무 위에sobre arbre’라는 뜻이다. 이 지역 기독교 바스크인들이 이슬람과 전투에서 거의 함락당할 뻔했을 때 나무 위에 십자가가 나타나서 모슬렘이 놀라 도망쳤다는 전설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유럽 사람들은 소브라베의 가을 숲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는다.

+ 엔코미엔다는 모슬렘을 정복한 군인들에게 보상하는 일종의 보조금 제도. 해당 구역에 속한 비기독교도의 노동을 독점하여 조공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로는 스페인 왕실은 정복자들에게 특정 영토의 비기독교도인 원주민에게 공물과 강제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정복 초기 사실상 노예가 되어 광산에 끌려가 금을 캔 원주민들이 모두 엔코미엔다 제도에 희생되었다. '위탁하다'라는 뜻의 동사 'encomendar'에서 파생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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