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스페인 재판
자비
페르디난드가 카스티야 여왕의 남편이 되었을 때 심문은 새롭고 강해졌다. 과정과 절차, 기소 이유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전의 심문과는 가톨릭 사제들이 효과적인 심문을 위해 물고문, 통닭구이 같은 고문 도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관 뚜껑에는 사람의 두 눈과 심장을 찌르도록 고안된 쇠꼬챙이가 박혀있었다. 재판에 부쳐진 사람을 관에 가두고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으면 관 뚜껑에 해부학적으로 고안된 못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눈과 심장에 구멍을 내서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어가도록 만들었다. 고문을 당하는 자가 빨리 죽는다면 그것은 너무 자비로운 일이었다. 관 뚜껑에 박힌 대못은 급소를 피해 그 주위를 찌르도록 고안했다. 그 고문 도구의 이름이 거룩하게도 ‘철의 성모 마리아’였다. ‘유다의 의자’도 있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심문하는 이 의자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 뾰족한 곳에 혐의자를 항문이나 질이 위치하도록 앉힌 후 서서히 몸을 묶은 줄을 풀어주면 몸의 무게로 천천히 몸속을 파고들도록 고안된 도구다. 수레바퀴에 사지를 결박하고 쇠막대기나 망치로 내리쳐 뼈를 부수고 불에 달군 인두로 심장을 지졌다. 자비를 베풀 때라면 칼로 목을 내리기도 했다. 여성의 질에 종 모양처럼 넓게 퍼진 쇳덩이를 집어넣어 강제로 벌려 찢는 도구도 있었다. 가마솥에 사람을 넣어 삶아 죽였다. 몸을 벗겨 횃대에 묶었다. 사람들은 몰려들어 묶인 남녀의 성기를 만졌다. 포경은 유대인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교수형을 당한 시체들은 목에 밧줄이 걸린 채로 광장에 방치했다. 광장에서 경찰 사제들의 고문이 시작되면 자백도 시작되었다. 자백이 끝날 때까지 고문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고문은 자신이 사탄임을 확실하게 인정하도록 단단하게 진행되었다. 광장에 게워놓은 자백을 다시 되삼 킬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고문했다. 추기경만이 고문을 중단할 수 있었다. 추기경이 그리스도의 자비로 고문을 멈추라고 손짓할 때는 이제는 그만 불태워 죽여도 좋다고 명할 때뿐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심문Inquisition이었다. 그때 스페인에서 이런 발명품을 창안하고, 사람을 고문하고 도살한 자들은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도미니크 수도회를 비롯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그들이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이때 생겼다. 한번 심문한 자를 같은 기소 사유로 다시 심문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이다. 다시 심문하지 않되, 잠시 중단했던 심문은 자백할 때까지 계속 연장되었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이단이라 자백하게 했다. 이단이 되었으므로 이제 산채로 불태워졌다.
새로운 고문에는 또 하나의 차이가 있었다. 과거에 심문할 때는 그래도 왕권이 바티칸 교황의 영향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르디난드가 심문할 때는 교황이 권하는 심문 방법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교황이 이사벨라의 남편 자리를 차지할 남자를 결정한 인사권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했던 스페인이었지만 그런 스페인을 쥐락펴락한 교황은 유럽 기독교 연방이라는 세속의 황제나 다름없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황금을 보유한 왕실이 로마 교황청이었다.
도고 카나리오라는 개는 스페인산 맹견이다. 아주 덩치가 크고 사나운 사냥개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로마 교황도 스페인산 도고 카나리오를 좋아했다. 그의 도고 카나리오 중 가장 사냥을 잘하고 인간을 잘 물어뜯는 개가 스페인의 심문관들이었다. 심문관으로 임명된 가톨릭 사제들이 콜럼버스와 함께 쿠바에 도착했다. 사제들의 큰 짐 가방에는 심문 때 쓸 고문 도구들이 차곡차곡 무겁게 들어있었다. 가톨릭 사제들은 스페인에서 하던 심문법 그대로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에게 고문했다. 그들이 베푸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자비는 단칼에 목을 베는 일뿐이었다. 그때 심문관들이 “산티아고!”를 외쳤다. 그들이 외친 산티아고는 죽을 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죽이는 자들을 위한 환각제의 이름이었다.
페르디난드가 이렇게 잔인하게 심문했던 이유는 또 있다. 초기 스페인 재판의 심문 대상은 모슬렘이 아닌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피가 더러워서 태어나면서부터 사탄이다’라는 명제가 있었다. 한 방울만 섞여도 그 피는 더러운 사탄의 피였다. 그래서 유대인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르디난드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의 피가 섞인 콘베르소였다. 그런 약점을 지닌 페르디난드는 이전보다 더 잔인하게 유대인이나 콘베르소들을 심문했어야 했다. 외할머니가 콘베르소인 이사벨라도 같은 처지였다. 이 부부가 스스로 로마 교황의 두 번째 사냥개가 되었다. 로마 교황은 둘의 가계 내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약점을 지닌 페르디난드를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라의 남편으로 지명했다. 이제 두 번째 사냥개가 아메리카에서 원주민 학살을 총 감독했다. 그는 가톨릭 교황을 위해 ‘피 더러운 자’들을 다 없애버리는 ‘피 깨끗한 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교황에게 오히려 ‘피 더러운 자’로 몰려 사냥개들에게 물어 뜯겨 죽을 수도 있었다. 생과 사는 그리스도가 아닌 교황의 혀끝에 달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