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콘베르소
콘베르소
소설 <돈키호테>는 돈키호테를 소개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라만차 지역 출신이며 값싼 요리를 먹고, 비쩍 마른 말 한 마리가 있으며, 토요일에는 “노고와 탄식”이라는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이 모두 가난하고 고단한 그의 처지를 설명하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노고와 탄식”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눈에 도드라진다. 유대인들은 로마가톨릭교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세비야에서만도 4천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스페인에 살았던 1/3 가량의 유대인들이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살기 위해서였다. 세례를 받았다면 개종을 입증해야 했다. 돼지고기 음식을 먹는 것이 입증 방법이었다. 돼지고기로 만든 햄과 베이컨을 씹어 삼키지 못하고 게워낸 자는 다시 사탄으로 판정되었다. 그리고 처형되었다. “노고와 탄식”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값싼 요리다. 하지만 노고와 탄식 없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조상 대대로 순수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노고가 되고 탄식이 나온다면 유대인이나 모슬렘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노고와 탄식”을 토요일마다 먹었다. 이 문장은 돈키호테가 피가 깨끗한 가톨릭교도라는 점을 설명하는 문장인 셈이다. 노고와 탄식을 견디고 돼지고기를 삼켜낸 자들을 콘베르소conversos라 불렀다. 1391년 한 해만도 35,000명의 유대인이 “노고와 탄식”을 먹어 삼켜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선동한 집단도 도미니크 사제단 형제였다. 유대인이 대중에게 미움을 사게 된 데는 세금 때문이었다. 왕이 세금을 거둘 때 가장 충실한 수단은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너무 수완이 좋아서 항상 초과해서 세금을 징수했다. 호사하는 왕들은 그런 그들을 잘 써먹었지만 지켜주지는 않았다. 초기 콘베르소들은 기독교인과 동등한 대우와 권리를 받았다. 기독교도와 혼인도 할 수도 있었다. 콘베르소들이 사회, 문화, 정치계에 광범위하게 진출해 권세 있는 인사가 될 수 있었다. 유력자 중에 부계나 모계에 유대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자를 찾기가 어려웠을 만큼 이들은 사회에 잘 섞였다. 이사벨라도 페르디난드도 콘베르소의 피가 섞인 몸이었다. 왕권이 강화되어가고 있던 시기였고, 왕의 위용은 돈으로 입증되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왕은 이미 종교재판으로 죽어 없는 유대인 대신 유대인의 피가 섞인 콘베르소를 세금 징수원으로 중용했다. 콘베르소들이 유대인 대신 상업과 의사, 예술가 같은 전문직을 두루 차지했다. 돈과 명예와 권세까지 차지한 집단으로 다시 성장한 것이다. 또다시 질투와 분노 그리고 혐오가 쌓였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는 이리에게 속지 말고, 누가 이리인지를 골라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제는 ‘노고와 탄식’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피로 이리를 골라냈다. 유대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고, 사탄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이 ‘노고와 탄식’을 삼키는 것도 양의 허울일 뿐이지, 그들은 여전히 유대교를 신앙하는 자들이고 매일 밤 유대교 의식을 비밀리에 치르는 자들이라고 충동질했다. 그들은 가톨릭 스페인 왕실의 적이고, 적그리스도 무리였다. 수백 년 동안 유대인과 기독교인, 아랍인이 이웃으로 함께 살아온 좁은 골목에는 유대인은 “더러운 개돼지 새끼들”이고 “피를 빠는 악마”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이 몰려다녔다. 어린아이 일지라도 유대인이라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이므로 잡아 처단해야 했다.
알바로라는 신부가 이사벨라의 아버지이자 카스티야의 왕을 35년간이나 잠자리에서 베갯밑송사했다. 그는 늘 산티아고 수도회를 상징하는 붉은 칼이 그려진 사제복을 입고 다녔다. 그는 이제 “진실의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알바로가 아라곤에서 시작된 종교재판을 이제 카스티야에서도 시작했다. 알바로는 본디 기사였고, 흥분한 투우의 정수리에 마지막 칼 찌를 최후의 투우사 마타도르matador였다. 그는 종교재판의 열기로 흥분한 순수한 피의 군중들을 보면서 이제 어떤 괴담을 퍼트려야 그들을 더 자극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수도복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칼이 달린 십자가다. 십자가는 피를 부르는 칼. 이제 최후의 투우사가 내뱉는 마지막 한 마디가 콘베르소들의 정수리에 꽂히는 칼이 될 터였다. 흥분한 투우를 향해 알바로가 붉은 천을 흔들었다. 진실의 순간이 시작되었다. “개종한 새 신자들이 오랜 진짜 신자들을 모두 죽여서 적의 손에 스페인을 넘기려 한다”라는 것이 그가 선택한 마타도어였다. 새로 신자 된 자들이란 콘베르소들을 말하고, 오래된 신자들이란 조상 대대로 로마가톨릭 신자인 선한 기독교인을 말하는 것이고, 적이란 적그리스도를 말한다. 콘베르소가 기독교인을 몰살하여 사탄에게 이 땅을 넘기려 한다. 진실의 순간, 소의 몸에 칼들의 끝이 한 곳에 꽂혔고, 붉은 피는 뿜어져서 스페인을 뒤덮었다.
이때 스페인 추기경이 콘베르소였다. 그 조카가 다음 추기경으로 후계하였으므로 그도 또한 콘베르소였다. 이들도 죽거나 아니면 살거나 둘 중 하나인 처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황의 강력한 수족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교황의 병기가 되었고, 고문 도구가 되었다. 이 콘베르소 추기경들은 유대인들을 세례라는 기독교 의식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 가톨릭 세례 의식도 유대교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진정하게 개종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세례 의식은 개, 돼지 새끼들을 모아놓은 일에 불과하다고 밝혀 말했다. 추기경들에게 콘베르소란 “세례로 위장한 유대인들이니 저주받아 마땅한, 혐오하고 말살해야 할 더러운 피를 가진 종자들이고, 이 세상을 유대인 소굴로 전복하려 음모하는 자들이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다.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 혐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고, 카리브와 아메리카에서 인디오 차별과 박해에 당위성을 주었다. “콘베르소는 불신자들의 자손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의 아버지고, 기독교 사회 파괴의 씨앗이고, 사악함에 충만한 자들이고,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반하는 짓만 하는 자들이다.” 콘베르소 추기경이 쓴 이 문장은 유럽 사회 구석구석에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의 선도국가였다. 스페인 추기경은 유럽 가톨릭 세계에서 제2의 교황이었다.
이사벨라 여왕은 고해성사를 자주 했다. 마주 앉은 신부는 머리 언저리 부분만 남기고 깎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머리 스타일은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사제의 징표다. 스페인 추기경인 그는 삼촌에게서 그 자리를 후계한 토르케마다Torquemada다. 그의 할머니가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전임 삼촌도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콘베르소였다. 집안의 혈통에 대한 비밀이 그를 더욱 잔인하게 행동하는 사제로 만들었다. 콘베르소인 국왕 부부, 추기경 모두 다 절벽 끝에 선 자들이었다. 기득권을 누리느냐, 절벽 밑에 추락해 심문의 대상이 될 것이냐. 그는 카스티야를 “깨끗한 피”만 사는 땅을 만들고자 했다. 유대인의 피는 기독교인들의 피에 비해 더 검어 육체가 악으로 더럽혀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기독교도들의 믿음이었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국왕 부부, 그리고 토르케마다 추기경이 한 조합이 되었을 때 종교재판의 심문은 또 한층 잔혹해졌다. 투우의 몸에서 피가 솟았다. 기독교인들이 열광했다. 이전까지의 심문은 피가 흐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을 열광시키지 못했다. 이사벨라가 고해할 때 토르케마다는 고해소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만일 당신이 왕위에 앉으면 이단 척결에 앞장서야만 하오.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이요, 가톨릭교회를 고귀하게 하는 것이오.” 둘 다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자들이 유대인을 더 많이 죽이고 유대인의 재산을 차지하는 방법을 고해소에서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고해소에서 나눈 대화는 신대륙에서도 이행되었다.
+ 콘베르소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다. 영어 convert에 해당하는 conversar 동사에서 파생했다. 이 개념이 확장되어 모슬렘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도 콘베르소라고 했고, 아메리카에서 기독교를 믿게 된 원주민도 콘베르소라고 했다. 로마가톨릭은 이들의 개종한 신앙을 끝내 신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