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말: 노인 용어 편

by 호호할머니

노인 용어 편: 2.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강아지야, 오늘도 밥 잘 챙겨 먹었지?


지난주에는 할머니댁에 기차를 타고 다녀왔어. 티거 언니 결혼식이 있었잖아. 언니는 소원대로 늠름한 신랑을 만나서 세 달도 채 안되어 결혼을 했어! 진짜 놀랍지? 언니가 행복해하니 엄마도 너무 기쁘더라!!!


신랑도 언니에게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우리 강아지가 들을 때마다 어색해하는 폴킴님의 노래를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어. 가사를 잘 들어보니 결혼식에서 왜 이 노래가 인기인지 알겠더라. 엄마도 눈물이 찔끔, 아빠는 콧물까지 훌쩍거렸어.


언니를 축하하러 모인 뜻깊은 자리는 물론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지. 결혼식 후 식사자리에서 급작스럽게 브라운 오빠의 결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던 거야. 아니 동생 결혼식을 챙기느라 밥도 못 먹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한 착한 오빠인데, 겨우 자리에 앉아 김밥 하나 먹으려고 하던 찰나에 할머니가 폭탄을 투척하시더라.


“이제 티거도 갔으니 담엔 니 차례인 거 알제? 니는 언제 결혼할 거야?”


할머니의 폭탄을 이어받은 기관총들이 고모 1, 2와 친척 어른 1, 2, 3, 4 등의 입을 통해 발사되었어.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땀도 못 닦고 뒤에서 오만가지 일을 해치우던 브라운에게 겨우 이런 말이 선물로 주어지다니 말이야!


어휴 이래서 미혼인 사람들이 명절이나 휴일 때 친척들 모이는 곳을 피하고 싶은가 봐. 엄마라도 아주 화딱지가 날 것 같아.


‘아니, 한 명이라도 소개를 시켜주고 말씀하시지, 아님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해 주시고 그러시던가요, 아니면 생활비라도 좀 보태주시고 그러세요. 요즘은 결혼이 필수가 아니에요. 꼰대 같은 소리 좀 그만하세요.’라는 말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목까지 차오를 것 같아. 하지만 우리 점잖은 브라운 오빠는 머쓱한 표정을 한 채 그저 미소와 인내로 위기를 넘기더라. 무거운 침묵과 붉어진 얼굴 속에 숨겨진 천 마디의 외침을 엄마는 읽을 수 있었지만 말이야. 며느리인 엄마가 그 자리에서 편들었다면 그야말로 핵폭탄이 날아왔을 테므로 아쉽게도 브라운 오빠를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


어른들은 왜 미혼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 질문을 하는 걸까? 본인의 결혼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전국결혼추진위원회라도 차리고 싶은 걸까?


그게 결코 아니란 것은 주변 기혼자들만 봐도 알겠지? 우리 어른들은 왜 이리 말을 가리지 못하고 참견하는 행동이 솟구치는 것일까? 엄연히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가 노인에 되어보니 어느 순간부터인지 왜 우리들이 자녀에게 결혼 타령을 하는지 좀 알 것 같더라.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어른들이 오래된 사고방식에 갇혀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규범이 결혼이라는 제도기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것도 좋은 분석이야.


맞아, 노인이 된다는 건 몸이 늙고 굳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까지도 굳어가는 것을 의미해. 이들은 자신이 힘들게 살아온 일생이 어떻게든 실패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오래되고 낡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지내지.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보기에 우리들이 자녀에게 결혼 타령을 하게 되는 이유는 더 있는 것 같아.


나이가 점점 들면 말이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돼. 나이가 든다는 건 외모나 건강이 쇠락하는 시기이자, 자신이 속해있던 모든 영역에서 ‘상실’만을 경험한다는 의미야.


직장을 떠나니 사회적 지위도 상실되고, 경제력도 상실되고, 인지 능력, 신체 능력도 다 잃게 되는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이 곧 완전히 소멸될 때를 떠올리며,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둘 자녀가 너무 안쓰럽기만 한 거야.


부모가 ‘힘과 능력이 없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자녀에게 잔소리라도 하며 편이 되어 줄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녹록지 않은 이 차가운 세상에 착하기만 한 우리 00 이를 혼자 남겨두고 어떻게 가나.’ 하는 두려움이 우리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 같아. 그래서 자신의 마지막 미션인 자녀의 짝을 찾아주는 일에 너도나도 관심을 갖는 것이야.


그러니, 주변 어른들이 “우리 강아지는 남자친구 있니?”하고 묻는 말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엄마는 우리 강아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야. 강아지가 원하는 대로 하렴!!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친구가 있건 없건 혼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해. 그걸 먼저 연습해 보면 좋겠어!


다만, 어른들의 “결혼은 언제쯤 할 거니?”라는 말은 실은, “우리 강아지야, (엄마-아빠)가 너를 정말 사랑해. 너무 사랑하기에 너를 혼자 여기에 두고 갈 것을 생각하니 많이 걱정돼. (엄마-아빠)가 사라지더라도 네가 정말 사랑하고 너를 정말 아끼는 평생 친구를 만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라는 의미라는 점만 알아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