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말 : 노인 용어 편
노인 용어 편: 7. 왜 노인들은 자식들만 보면 아프다는 얘기를 샘솟듯이 쏟아낼까?
어른들을 찾아뵈면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식들에게 지금 어디가 아픈지를 줄줄이 소시지처럼 늘어놓는 패턴을 흔히 볼 수 있지?
마치 자신이 종합병원의 축소판인양 만날 때마다, “어흠 내가 며칠 전부터 목이 칼칼해서 동네 병원에 가보니 아무래도 기관지에 큰 병이 있나 봐. 발견을 못해서 0 대학병원에 갔잖아.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거야. 후두암이 의심스럽네,” “요즘 소화가 통 안 되고 입맛이 없는 게 아무래도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나 봐,” “어제부터 배가 살살 아픈 게 장에 큰 탈이 났나 봐,” “머리가 하루 종일 띵 한 게 뇌종양이 의심스러워.”와 같은 갖가지 과장된 병증을 늘어놓지. 얘기만 듣고 있어도 속이 답답해지고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지잖아.
젊은 사람들이 겨우 시간 내어 방문하는 것인데, 그 새를 못 참고 저런 억지 병증을 늘어놓으니 얼마나 더 오기 싫을까? 엄마가 생각해도 아주 질색팔색일 것 같아.
보통은 누군가를 만나 ‘대화’라는 것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살피면서 내 말의 수위나 내용을 조절하잖아.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자신의 말만 뱉어내는 데만 온통 집중해서인지, 상대방이 얼마나 지겨워하거나 괴로워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어. 상대의 썩어가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미미한 증상을 호소하기에 바쁜 것 같아. 기가 막히는 점은 병원에 모시고 가면 또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거야! 딩.동.댕! 전형적인 ‘신체화장애’라는 거지.
엄마도 그런 나이지만 그 나이에 어디가 안 아픈 게 이상한 것 아니야?
늙었으면 어디가 아픈 게 당연한 거지, 왜 그리 쌩쌩한 몸상태나 팽팽한 얼굴짝에 집착을 하는지 엄마도 잘 모르겠어. 하물며 자동차도 10년을 넘게 타게 되면 여기저기 크고 작은 고장이 나잖아. 그런데 몇몇 노인들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보여.
이 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늙을수록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된다는 것인데 ‘주름살이 있다 = 추레하다’는 아니잖아. 이건 개인 위생과 단정함과 품위의 문제잖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버님 돌아가시자마자 91세의 나이에 대대적인 주름살제거 성형수술을 감행하신 시어머니가 떠오르네. 어휴.
엄마가 노인이 되어 주변인들을 지켜보니, 어른들은 아프다는 표현을 ‘사랑을 구걸’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쓰기도 하는 것 같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몸이 부서 저라 고생했는지를 알리려는 일종의 셀프 프로모션이겠지. 아니 자식을 위해 그 정도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 그건 지극히 당연한 부모의 책임인데 말이야.
이들은 실제로 몸의 이곳저곳이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아픈 것을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관심과 사랑을 주니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 거야. 왜 연인들 중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아픈 척을 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잖아. 참고로 이런 유형이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얼른 도망치렴.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야 해, 잘 알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어른들은 아프다고 말하면서 자녀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모양이야. 사람들이 보통 병자에게는 - 그가 살인자일지라도 -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주고 아픈 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니까.
아무튼 억지 병증으로 자녀들에게 관심을 끌고 붙들어 매며 효도를 강요하는 패턴은, 우리들이 당장 그만두어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서 자녀의 진심 어린 애정을 얻을 수도 없을뿐더러, 넌덜머리 나고 부담스러운 노인네로 취급되는 초고속 열차에 탄 것이니까! 가뜩이나 어려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걱정 짐가마니를 이고지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우리 나이쯤 되면 누군가의 애정을 얻기 위해 ‘사랑의 스쿠루지’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와 주는 이에게 감사하며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야 한단다. 누군가를 매일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너무나 짧거든!
이제는 남은 생을 그간 받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의 빚’을 갚는데 다 쓰기를 소망해.
그러니 우리 강아지도 엄마-아빠 걱정은 딱 끊고 자유롭고 즐겁게 생활하기 바란다! 아빠가 아침마다 아픈 시늉하는 것은 강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엄살 행동이니 신경 쓰지 말고, 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