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말 : 노인 용어 편
노인 용어 편 : 6. 왜 노인들은 가르치려고만 할까?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야, 오늘은 엄마를 포함해서 어른들이 자주 보이는 ‘가르치려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
엄마도 우리 강아지 나이 때는 ‘어른들 = 잔소리 대마왕,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듣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반복하는 사람들, 다 아는 내용을 길게 설명하며 가르치려는 사람들, 고리짝 생각에 갇혀 자신만의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와 동일시할 때가 종종 있었단다.
‘유익하고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 듣지 말라고 해도 앞다투어 들을 텐데. 거참 답답하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 그런데 엄마가 이제 노인의 나이가 되니 왜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줄기차게 가르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더라. 그렇다고 그게 맞다는 것은 결코 아니야.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세상이 변했다는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져서인 것 같아. 나이가 들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들은 점점 고립되는데, 세상과 교류하는 범위가 아주 축소되는 거야. 이것은 세상이 시시각각 어떤 속도로,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놓치게 하지. 뉴스를 아무리 열심히 보고 공부한다고 해서, 현실감 있게 파악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왜 글로 연애를 배운 사람들이 이론만 빠삭하고 실제에선 뚝딱거리는 것처럼. 이때 이상한 뉴스에나 안 빠지면 다행이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범위가 좁아지면, 가령 매일 똑같은 노인들만 만나고 똑같은 이야기만 듣고 똑같은 활동만 하게 되면, 새로운 사고를 할 필요가 없는 거야. 왜 몸에 밴 습관은 생각하지 않아도 자다 깨도 바로 실행할 수 있잖아. 그러니 사고의 확장 같은 것은 어림도 없지. 낯선 상황과 새로운 지적 자극이 있어야, 새로운 대처 방식을 고안하고 연습할 기회도 생기잖아. 그래야 또 넓은 시야와 이해심도 싹틀 수 있을 텐데.
특히, 노인 집단에서 목소리 크고 고집 센 사람이 설치기 시작하면, 그릇된 정보도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져 버린단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에, 전파력이 크다는 데 문제가 있어.
물론 우리 노인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가 불편해서 익숙하고 편한 것을 반복하겠지만, 일단 그런 기회 자체가 젊었을 때보다는 현저히 사라진단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에서 계속 지내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이 구사하던 오래된 방식만 고수하는 태도가 점점 더 굳어져. 사고도 완전 딱딱하게 고정되는 거야.
한마디로 나이가 들면 몸도 딱딱하게 굳는 것처럼, 개인이 피나는 엑스트라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마음과 생각도 돌덩이처럼 딱딱해진단다. 따라서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하면서 몸을 유연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의식적으로라도 융통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
이것을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단 누구에게든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장착하는 게 좋겠지. 아무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더라도, 어느 존재에게서든 배울 수 있는 좋은 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야.
왜 아파트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우리 노인들이 어린이를 만나면 다짜고짜 반말을 한다든지, 인사를 하네 마네와 같은 코멘트를 하거나, 예쁘다, 잘생겼다와 같은 외모 평가를 하는 무례한 행동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잖아. 그런 행동은 당장 끊어야 해.
우리에게 무슨 권리가 있길래,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처음 보는 존재를 막 반말로 대하고 외모와 행동 평가를 한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역으로 생각해서,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어린이가 노인에게 “오~ 할머니/할아버지는 뱃살이 울룩불룩 귀엽네. 거기다가 주름도 얼굴 전체에 균등하게 자글자글 잡히잖아!” 뭐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괜찮겠어?
그리고 지하철 같은 데서 자리가 난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엉덩이부터 들이민다든지, 괜히 학생들 앞에 서서 비키라는 듯이 얼쩡거린다든지 이런 행동 또한 당장 멈춰야 할 것 같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콧구멍만큼이라도 있다면 말이야. 학생들도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고단한데 그런 행동을 하다니!
무거운 궤짝 같은 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엄마는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싶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어떻게 잠시 잠깐 쉴 수 있는 지하철 좌석을 뺏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워. 어른이 말이야. 죽으면 어차피 지겹도록 누워 있을 텐데!
생각을 유연하게 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야 해.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어. 무엇보다, 많이 배우고자 하는 생각과 배운 바를 실천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입을 닫고 ‘경청’을 하는 거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노인들이 가르치려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같아. 이게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만은 기억해 두면 좋겠어.
의식적으로 그런다면 ‘진짜 별로인 어른이군. 젊은 사람들의 귀한 시간을 뺏어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 하다니.’라고 치부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 그저 누군가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맞다고 계속 ‘주입(가르쳐주는 형태로)’시키면서 ‘내가 그래도 지금 팔십 평생을 살았는데 잘못 산 건 아니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행동 같아.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도 자신을 무시 혹은 부인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 다른 말로는, 확대 해석을 하며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흠집이라도 날까 봐 박박 우기는 꼴이지.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경우라면 더욱 가르치려고 하겠지. ‘내가 왕년에 이렇게 해서 그만한 성공을 획득한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을 지탱해야 하니까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왜 상실만이 찾아온다고 했잖아.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더라도, 직업, 건강, 지적 능력, 사회적 교류 등에서 상실만이 있거든. 그래서 그나마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게 과거를 돌아보며 ‘그래도 내가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서 잘 살았지. 내가 택한 방식이 옳았던 거야.’라고 위안을 삼는 거야.
그런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마주하면, 그것이 단지 특정 이슈에 대한 다른 의견일 뿐인데, 자신의 인생 전체가 부인당한다고 생각해서 기겁을 하고 난리 발작을 보이는 거야. 그래서 젊은이들을 만나면 ‘내 인생이 옳았다. 내 방식이 맞았어. 너도 이 방식으로 해봐.’라고 무의식 중에 자꾸 가르치려는 것 같아.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물론 99.9%가 원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만약 젊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고 싶다면 먼저 물어보겠지, 안 그래? 얼마나 똑똑한 친구들인데!
또 어떤 분들은 반대로, 자신이 잘 못 산 부분에 대해 자녀가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부득부득 가르치려는 행동을 하는 것 같아. 특히 우리의 잘못된 행동이나 선택으로 인한 실패를 뼈저리게 느끼며 평생을 후회 속에 살고 있는 경우라면. 이런 분들은 더욱 자녀의 인생에 날을 세우고 혹시 자신과 같은 길에 들어서지 않을까 해서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지.
왜 우리 강아지도 무언가를 잘못해서 실패한 경험으로 무척 후회를 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친구가 그런 똑같은 행동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면 넌지시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고 싶잖아. 내가 아끼는 친구라면 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이런 차원에서 어른들도 계속 알려주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영문도 모른 채 억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가 그지없지. 왜 청하지도 않은 가르침을 주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잖아. 어른들이 넌지시 힌트를 주는 스타일도 아닐 것이고, 많은 분들은 강요 비슷한 뉘앙스로 말을 하시니 말이야.
차라리 “내가 같은 상황에 있었는데, 그때 멍텅구리처럼 잘못 행동해서 큰 실패를 하고 개망신을 당했다. 그래서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라고 솔직하게 운을 띄우고 말씀을 꺼내면 좋으련만, 또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거의 없잖아. 다짜고짜 “내가 이 분야는 잘 아는데 말이야. 내 때는 어쩌고 저쩌고… 왕년에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식으로 말을 시작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귀를 닫아버리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지.
마지막으로 우리 노인들이 가르치려고만 하는 까닭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인 것 같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행위는 아직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나눌 것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잖아. 그래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 가르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찾나 봐.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오는 보상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니까. 그래서 노인들이 상대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회를 포착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가르치려는 위치에 자신을 얼른 갖다 놓는 것 같다는 엄마의 해석이야.
하지만, 우리 노인들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지혜를 전수해주고 싶다고 해도,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는 것 같아. 이건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지금은 우리 노인들이 살던 시대와는 완전 다른 시대라는 것이야. 다른 시대,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야. 물론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가치들, 가령 ‘이웃을 사랑하자,’ ‘양심을 지키며 살자,’ ‘자녀에게 모범이 되자.’와 같은 부분들은 바뀌지 않겠지.
하지만 어른들이 가르치려 하는 것들은 사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추측 기반의 훈수일 뿐이야. 젊은이들이 직업적, 진로적, 학업적 고민을 할 때, 노인은 전쟁통에 경험했던 좁디좁고 오로지 생존이나 가난 탈출을 목표로 하는 사회생활을 기반으로 가르치려 든다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지.
지금 사회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바뀌고 개인의 가치 체계도 얼마나 다양한데. 그런 세계를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우리 어른들이 무슨 자격으로 가르치겠어.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 젊은 친구들이 시간을 내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 우리들은 빨리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다음 세대들을 무한히 응원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어. 무한히 지지하며, 우리들이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모범이 되는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날마다 노력하기에도 짧은 인생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