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말 : 노인 용어 편

by 호호할머니

노인 용어 편 : 5. 왜 노인들은 자식들만 만나면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는 소리를 할까?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야, 오늘은 시대를 불문하고 연로한 부모를 찾아뵐 때 99%의 확률로 듣게 되는 말, 즉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게!


자식들은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무척 마음이 아프고 서글퍼지며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하지만, 이 문장이 거듭될수록 마법에 걸린 것처럼 처음의 충격은 그림자도 없이 자취를 감춘단다. 나중에는 위로를 포기하고, ‘어휴 그러면 그렇지 왜 또 그 얘기가 안 나오나 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앉아있네.’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잖아. 그럼에도 우리 노인들은 이 문장을 포기하는 법이 없어.


자식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이 말을 꼭 읊조리듯 내뱉으시지? 그러면서 떠나가는 뒤통수에 대고 무겁고 촘촘한 그물을 던지는 거야. 어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엄마가 찰떡 같이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몇 가지 이유는 짐작할 수 있어.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속에 숨은 참 마음 중 하나는 바로 미안함인 것 같아.


자신이 젊고 힘이 있어서 활동적으로 생활했을 때는, 자녀들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제공할 수 있고 서포트할 수 있었지. 그래서 자신이 유능하고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을 거야. 그런데 나이가 들고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난 후부터, 혹은 그전이라도 건강이 나빠져서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려워지고 나서는, 자신이 더 이상 세상에,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어. 이때 왕성한 활동으로 바빠진 성인 자녀가 무의식 중에 보이는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에 더욱 눈치 꾸러기가 되지.


한마디로 어른들은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거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할뿐더러, 자리나 차지하고 앉아서 밥이나 축내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는 거야. 그래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녀에게 자신이 들러붙은 ‘혹’이나 ‘짐 떼기’처럼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척 염려되고 미안하지.


부모 세대는 누구보다 억척같이 살아낸 세대잖아. 그래서 전쟁통으로 폐허가 된 나라도 그 짧은 시간에 재건하고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어 냈지. 이러한 과정이 그야말로 얼마나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겠어. 인간의 존엄성, 인권 또는 개인의 가치 추구와 같은 상위 개념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기였을 거야.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극강의 노동으로 가족을 지키고, 일으켜 세우는데만 모든 노력을 쏟아야 했겠지.


이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서의 ‘기능’이었던 거야. 돈을 벌어와야 하는 기능,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하는 기능, 아이들에게 삼시세끼 밥을 제공해야 하는 기능과 같은 부분들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겠지. 따라서 부모가 연로해져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마도 무척이나 황망하고 좌절을 느낄 수 있어. 무척이나 슬플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니 말이야.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와 맞닿아있는데,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자녀들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인정받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


연로한 부모가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 자녀들은 보통 “무슨 말씀이세요. 다시는 그런 말씀 꺼내지도 마세요, 서운하게. 저희랑 오래오래 같이 사셔야죠.”라고 국룰처럼 말해 드리잖아. 그러면 어른들은 자신이 이곳에 필요한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불안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거지.


‘그래 내가 우리 손주 시집/장가가서 아기 낳는 것까진 보구 가야지. 애기가 태어났는데 어른이 없으면 좀 그렇잖아.’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게 되지. 그래서 자녀가 방문을 할 때마다 가족 안에서의 자기 가치와 자리를 확인받기 위해 계속 저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부모가 나이가 많이 들수록 주변에서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을 점점 볼 수 없게 된단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한 명씩 세상을 휙 떠나니까. 노인들은 외롭고 고립될 수밖에 없어.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 동료, 선배, 심지어 후배까지 앞다투듯 모조리 다 세상을 떠나는 거야. 그것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이야. 이별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을 거야. 정말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겠지? 따라서 보살핌과 위로를 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나아가, 자신과 동년배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므로 노인들에겐 죽음이 목전에 있다는 실감이 날 거야. 언제든지 자기 차례일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품고 살겠지. 그래서 자녀들을 만나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내가 또 언제 너를 볼 수 있겠니”라고 하며 죽음이 코앞에서 자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푹푹 풍기는 거야.


그러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어. 그분들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반복해서 짜증 나겠지만, 나이 듦에 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상실로 인해 상처 입고 두려워하는 연약한 영혼일 뿐이니까. 조금만 너그럽게 받아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면 좋겠어.


지금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누구나 다 언젠가는 노인이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