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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아빠 Feb 01. 2024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다

작가가 되기 전 유년 시절

성경의 인물들 중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사도 바울 등 여러 명을 꼽을 수 있다.(단연코 예수님이 최고이지만, 예수님은 워낙 넘사벽이라 논외로 하기로 함.)

필자는 그중에서 요셉과 다니엘을 특히 더 좋아하는데, 그들은 특별히 하나님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받았으며, 엄청한 인생의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작가가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고, 본인이 암에 걸렸을 때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라고 했다지만 성경은 견딤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고통을 극복해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영감, 도전을 준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로마서 5:3-5


요셉 :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해 노예로 팔려감. 노예로 개고생 하다가  바로 왕의(파라오) 꿈을 해석, 대기근의 시대를 이겨낼 지혜를 통해 애굽(이집트)의 이인자로 거듭남 - 형들을 용서하기까지 함.. 대박..


다니엘 : 나라가 전쟁에 져 바벨론(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감. 귀족의 신분에서 포로로 전락함. 왕이 하사한 음식을(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 먹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채식만을 하기로 결정한 후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 총명함 등이 임함. 느부갓네살 왕(네부카드네자르)의 꿈을 해석하여 신분 급급급상승함! 관리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지지만 사자들이 감히 어떻게 하지 못함.


이렇게 요셉과 다니엘이 엄청난 꿈의 사람들이었는데, 나 또한 또 다른 의미로 꿈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아름다웠고, 필자의 인생은 아름답지 못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은 공부, 좋은 성적과는 거리가 아주(X10) 멀었는데, 그 이유는 1.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으며, 2. 성적이 좋지 않아도 부모님께서 나무라지 않으셨고, 3. 오락실 게임에 푹 빠져, 오락실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오락실의 게임에 사로잡혔던 이유는 스트리트 파이터나 파이널 파이트 등의 격투게임 등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니라(좋아하긴 했지만) 마왕이 공주를 납치해 가거나, 주인공이 저주를 받아 다른 생명체가 되거나 하는 등 사연이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게임의 스토리의 끝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중간보스와 동료가 되는 이야기, 끝판왕을 물리치고 주인공이 본래의 모습을 찾는 이야기, 마왕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 공주와 결혼하려고 하는 찰나에 부활한 마왕이 다시 공주를 납치해 가는 이야기...


필자는 어릴 적부터 신기한 이야기라면 도무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민학교 시절부터 전래동화를 즐겨 읽었으며,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필자의 집에 없는 전래동화나 아프리카 전설 등의 이야기를 읽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요상한 이야기의 결정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었다.


그렇게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이 되었을 때에 무서운 이야기에 눈을 뜨게 되는데, 때마침 TV에서는 이야기 속으로(MBC),  토요미스테리극장(SBS)이 유행이었다. 필자가 어릴 적 접한 무서운 이야기라면 할아버지 댁에 가서 처음 본 전설의 고향-덕대골 편을(내 다리 내놔, 로 유명함) 본 게 처음한데, 귀신과 초자연적인 이야기의 매력,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셨기에 가게를 끝내고 집에 오시면 거의 밤 10시가 다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소방공무원이셨는데, 현장에 출동하시는 일을 하셨기에 하루는 출근, 하루는 쉬는 교대근무를 하셨다. 그 당시 형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막장 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걸로 기억함... 그래서 아버지께서 근무 중이신 날, 어머니께서 가게 운영을 마치고 귀가하시기 전까지는 텔레비전은 온전히 필자의 차지였다. 그렇다 보니 필자는 늘 TV를 끼고 살았는데, 드라마나 연예 프로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공포, 미스터리 방송을 즐겨 보았다.


특히 필자가 좋아하던 방송은 MBC에서 하던 '이야기 속으로'였는데 이야기 속으로는 무서운 공포 이야기 외에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어느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마을 주민이 직접 방송에 나와 증언을 했음) 등도 자주 소개했다. 새로운 이야기, 신기한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던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그보다 더 나은 것 없어 보였다.


교회를 다녔지만 *영적 원리와 흐름을 모르던 시절이라 필자는 악의 영의 손길에 그대로 노출됐는데, 필자는 점점 무서운 이야기에 중독이 돼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제는 점점 더 자극적인 이야기, 더 기괴한 이야기에 심취하게 됐는데, 그때쯤 필자는 스스로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가위에 눌리게 된다.

*영적 원리는 아래 못다 한 이야기에서 다루겠음.


처음 가위에 눌렸던 건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그날 필자는 작은 방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필자의 어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처음 가위에 눌려서 가위가 뭔지 몰랐지만 땀으로 흠뻑 젖은 베개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느낌이 필자를 몹시 두렵게 만들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계신 안방으로 가 어머니 옆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 그때 다시 한번 생생한 공포가 펼쳐졌다.


꿈속에서 필자가 누운 머리 뒤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나무의 굵은 가지에 목을 메단 여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여자의 발끝이 필자의 이마에 닿았는데, 필자는 몸을 꼼짝도 할 수 없고,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 웅얼대는 소리,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 동굴 같은 곳에서 들릴 것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필자의 귓가를 맴돌고 있어 필자는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미칠 것만 같은 공포감을 이겨내고 억지로 잠에서 깼다가 피곤함에 잠시 눈을 감았는데, 세상에나! 나무에 매달려 있던 여자가 바로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웃기는 건 나무에 여자가 목을 맨 이야기는 국민학교 시절 한동네에 살던 친구가 해준 이야기였는데, (여자가 매달린 나무 아래 땅을 파 보면 여자가 자살하게 된 이유가 적힌 비밀 종이가 묻혀 있다는 되지도 않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함...) 그게 필자의 기억 속에 숨어 있다가 필자가 가위에 눌렸을 때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되살아 났던 것이다.


그 후로 필자는 거의 가위의 사람, 가위에 의한 사람, 가위를 위한 사람이 되었는데, 학교에 가서 야자를 할 때도 가위에 눌렸고,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도 가위에 눌렸으며, 교회에서 철야예배를 하며 잠깐 눈을 붙일 때도 가위에 눌렸다. 시도 때도 없이 눌리는 가위 때문에 필자는 늘 피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가위에 시달렸는지, 나중에는 더 이상 가위에 눌리는 게 무섭지 않고, 어, 가위 왔어? 오늘 뭘로 무섭게? 적당히 하다가 가라? 이런 말을 하다가 다시 잠에 드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이집트)의 이인자가 되었지만, 사실 그는 형들의 곡식 단들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꿈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해 노예의 신분이 되었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고,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도 범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필자는 중학교 1학년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소나기의 이야기를 각색해 보며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큰 꿈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필자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평범하기 그지없었으며 어린 시절 품었던 작가에 대한 꿈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필자가 방황의 극을 달리던 대학교 4학년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필자가 어떻게 문예창작학과에 오게 되었는지(지원서를 넣었던 세 곳의 국어국문과는 모두 탈락, 문예창작학과 한 곳만 합격), 어떤 동화작가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죄 사함을 받아서 행복했고 삶에 기쁨이 넘쳤지만, 동화작가가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 동화작가에 대한 사명에 대해 듣는 순간 필자는 비로소 필자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두 다 그렇지만 않지만, 이 세상에 동식물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음식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우주의 태양과 달과 별을 지으신 이유와 목적이 존재하며, 세상에 선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악한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도 다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는 모두 다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우연한 사건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때 인생의 참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제 필자는 하나님의 동화작가가 되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춘문예 등의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며, 장편동화와 단편동화집을 내기도 했다. 요셉과 다니엘처럼 위대한 꿈의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작가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대전 KBS 소소공방에 출연해 직장인 당진시청에서의 활동과 SNS 콘텐츠 제작에 대해서도 소개하게 되었다.(나중에 소개하겠지만, 필자가 당진시청에 임기제공무원으로 입사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은혜였다.)


아직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모르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했거나, 어떤 꿈을 가져야 할지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꼭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소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우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계신다.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내보내셨는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이 위대한 꿈의 사람이 되는 출발점이다.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적 상황 등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만이 확실한 답을 알고 계신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께 묻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못다 한 이야기


필자는 흉흉한 꿈의 사람(가위의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 음란한 꿈의 사람이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음란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상상 속에서 잠깐 현실로 돌아와 수업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때 필자는 수업이 진행되든 말든 음란한 생각을 계속할지, 아니면 음란한 생각을 버리고 수업에 집중할지 선택을 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계속 음란한 상상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에 이런 귀한 말씀이 있다.


잠언 4장 23절 말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지만 필자는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말씀대로라면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었다. 필자가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즐기기로 결정했을 때 심각한 가위에 눌렸던 것처럼, 음란한 생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을 때 음란의 영이 합법적으로 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필자는 음란한 꿈을 많이 꿨는데, 그럴 때마다 원치 않는 몽정을 해야 했다.


건강한 남자가 몽정을 통해 정자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지만, 몽정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건 절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필자가 음란의 영에 사로잡혔을 때 하루에 2번 이상 몽정을 겪기도 했는데, 집에서 잘 때도, 아침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기 전에 잠깐 침대에 누웠을 때도 몽정을 했으며, 심할 땐 고등학교 때 학생회 간부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강원 영월 김삿갓 계곡으로 수련회를 갔을 때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을 때도 몽정을 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그것도 학생들이 있는 버스 안에서 몽정이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 이것도 가위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필자를 괴롭히지 못하게 됐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필자를 음란의 영에서 자유하게 해 주셨다.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을 한 번에 멸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세상엔 선한 생각을 하고, 약한 사람을 도우며,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손쉽게 양심을 버리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 이 둘의 차이는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결정하냐의 차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든,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살든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악한 영도 우리를 강제로 조종하지 못한다. 오직 사람이 악한 영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악하게 살기로 결정했을 때 악한 영의 역사가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필자는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시도 때도 없이 몽정을 하는 고통을 당했지만,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기로, 누군가를 괴롭히고 위해를 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뉴스를 통해 수도 없이 듣고 있다.


영적원리는 무척이나 심오하고 난해하기에 필자가 다 알 수 없지만, 필자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사건의 시작은 자유의지로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기로 결정할 때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기로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번에는 필자가 꿈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대학생 시절, 문창과에서 어떤 소설을 썼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동화작가가 되기로 결단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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