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뒤로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by 포도씨

어릴 때, 외할머니가 나를 돌봐줬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웠던 부모님은 나와 한 살 터울인 남동생만 데려간 채, 어린 나를 홀로 그 집에 한동안 맡겨놨었다. 눈칫밥이 뭔지도 모른 채, 우리 가족 중에 나만 그 집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게 왠지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물론 외삼촌 가족과 사촌들은 나를 무척 잘 챙겨줬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는 않는다. 밥을 해주셨던 것 같다. 할머니가 지은 완두콩 밥이 떠오른다. 가끔은 나를 혼내고,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는 이미지도 남아 있다.


이후 나는 다시 원래의 가족의 집으로 돌아갔고, 가끔씩 외삼촌 집에 와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점차 쇠약해져 가셨다. 밥을 직접 하지 않게 되셨고, 걷기 어렵게 되셨고, 어느 순간부터는 한쪽 방 안에서 누워만 계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일 때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마주하자 대성통곡을 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들어본 적 없던 울음소리를 내었다. 아마 내가 봤던 엄마의 가장 큰 슬픔 표현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물어보지 않았고, 지금도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한다. 당시 나의 관심은 할머니의 죽음보다, 그리고 엄마의 슬픔보다, 중간고사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삼일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린 나를 어렵게 했다. 내일 시험은? 그럼 나의 성적은? 그것이 장례식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슬퍼하며 우는 엄마에게 다가가 시험 때문에 집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의 표정은 어땠을까? 슬픔? 안타까움? 아닐 것이다. 아마 짜증스럽고 난처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은 안중에도 없고 이런 상황이 정말 싫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표정. 잠시 자리를 지키다가 집으로 홀로 돌아갔다.


그날, 거기에서 가장 슬프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리고 가장 망가진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던 말을 털어놓자면, 나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거나 슬픔에 젖어들어보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의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함께 애도를 표현해야 함을 알고 행동하지만, 감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냉정한 인간. 사랑을 모르는 사람.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다면, 이별과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아오면서 마주치는 어떤 이별들 앞에서도 나는 손쉽게 관계를 정리했었다. 마치 짐을 버리듯. 무언가 망가진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잘 못된 것이 아닐까. 나는 문제가 있는 존재라는 시선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요즘 4살 첫째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좀 찾아보고 있다. 조선미 선생님의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라는 육아서적을 우연찮게 읽게 되었는데, 아이와 부모의 ’ 애착’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대목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 이상하게도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아빠는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거의 술에 취해있었고, 집기들을 던져 박살 내곤 했으며, 가끔은 지금까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위협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술주정하는 아빠를 피해 방문을 잠그고 겨우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 가스관을 터뜨려 죽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를 두려워하는 나와 동생을 놔두고 한 때 집을 나갔었다.


나에게 ’ 부모’에 대한 애착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었을까? 아니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감정을 숨기고, 표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어린 나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생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의미 없고 보잘것없던 그 중간고사가 어쩌면 그 당시 나의 유일한 동아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냉정한 인간이라고 부끄러워해 왔다. 스스로를 괴로워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냉정한 시선을 거둬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그 당시의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줘야 할 것도 어른이 된 나의 일이 아닐까.


그러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전에 나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진정한 사과를 전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할머니. 어린 손주를 위해 밥을 차리셨던 당신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습니다. 당신과의 이별보다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버렸습니다. 편히 쉬고 계시길 빕니다.


그리고 그날 눈물이 멈추지 못하던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를 떠나보내는 그 슬픔의 자리에서, 그 고통에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앞에서 투정이나 부린 어린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지금에서야 그때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모든 고백이 끝나고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닫은 채 살아온 상처받은 아이에게.


네가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다.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일구고,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나의 가족이 생겼고, 그들을 사랑한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왠지 모르게 그들의 죽음과 이별을 떠올리게 되면 너무 괴롭고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아마 나는 이전의 감정 없는 사람에서 어느새 사랑하게 된 사람이 된 듯싶다.


이별과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이 더 소중한 것이겠다. 첫째 아이가 밥을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 밥을 먹지 않으면 간식은 없다고 엄포를 놓자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씻기 싫다고, 더 놀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와 기싸움을 한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나는 아이를 부른다. 왜 부르느냐고 묻는 아이에게 말없이 두 팔을 벌려 포옹을 한다.


”사랑해. “


”아빠, 나도 사랑해. “


냉정한 마음이라기엔, 나와 아이의 체온은 너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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