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처가에 가는 날이었다. 식사와 세면, 옷 갈아입기 등으로 분주한 아침을 보내면서, 나는 차와 집을 오가며 가져가야 할 짐들을 옮겨 실었다. 짐을 다 실고, 출발할 때가 되었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 집에 간다고 며칠 전부터 신이 나 있었다. 나와 아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는데,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기다리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으나, 아이는 계속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삐삐- 거리는 도어락의 전자음이 시끄럽게 내 귀를 긁어댔다. 몇 번의 인내 끝에 나의 목소리는 커져버렸다. “기다리라고 했지!” 아이는 순간적으로 굳었다. 나의 기분도 함께 굳어 가라앉았다. 한숨이 나왔다.
차 앞에 서서 둘째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기 위해 승객석 문을 열려고 하는데, 첫째 아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첫째 아이는 카시트 때문에 반대편 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왼쪽으로 돌아서 엄마에게 가라고 지시했다. 주차장 구조상 둘째 아이가 타야 할 쪽 문을 열면 첫째 아이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기어코 오른쪽으로 돌아나갔다. 그 바람에 승객석 문을 열려던 나는 주춤거렸다. “아우- 진짜 말을 안 듣는구나!” 나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깊은 불만을 내쉬어버렸다.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것인가. 처가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밥을 먹는데,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식탁을 앞에 두고 밥이 먹기 싫은 아이는 흐느적거렸는데, 그게 그렇게 눈꼴시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을 먹거나, 원치 않으면 바닥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아이는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먹지 않을 거라면,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아이는 내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바로 드러누우며 날 쳐다봤다. 나는 왠지 모를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밉다는 듯한 마음을 담아 노려봤다. 아이도 내 눈을 마주 보고 있었으나, 두려워졌을까,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멈추지 않고 노려봤다.
그러나, 나는 뭐가 그리도 화가 났던 걸까. 만 4세 어린이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보내는 중년의 남성으로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현관문을 언제 여는지가 그리도 노여웠을까. 아이라면 으레 할 수 있는 밥투정이 내 아이에게만은 특별한 일이라도 되었던 걸까. 모르겠다. 실은 이 모든 것은 이해가 되는 영역들이었다. 어린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의 그 노려봄이었을 뿐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분노의 근원을 찾아서 거세게 흐르는 감정을 거슬러 오르고 싶어졌다. ‘화’로 포장된 마음의 꺼풀을 벗겨내어 내부에 숨겨진 것의 진실을 찾아보고 싶었다. TV를 보면서 웃고 있는 아이를 뒤로 한 채 고민에 빠졌다. 첫째가 내가 한 말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 나는 무시받았다는, 아이가 나를 무시했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았다.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받았다는 판단이 나를 뒤흔드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곧 분노로 연결되는 경험이 지난 시간 지난하게 반복되어 왔었다.
그런 류의 마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속 닫힌 여러 방들의 방문을 열어가며 하나둘씩 살펴봤다. 한 가지 기억을 찾았다.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다. 의사놀이 시간이었다. 우리 어린이들은 모두 마분지로 만든 청진기나 머리에 두르는 반사판을 쓰고, 하얀색 의사가운을 걸쳐 입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친했던 친구 두 명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내가 오자 책상의 맞은편으로 이동했다. 나는 다시 그들을 따랐다. 그들은 내가 따라오는 것이 웃기다는 듯이, 아니면 나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즐거워하며 또다시 내가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때의 좌절감과 존중받지 못한 마음은,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거절감이었을 것이다.
오랜 기억과 함께, 부모님과의 관계도 떠올려봤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아버지에 대해서. 처음 시험 성적이라는 것을 받아 들고 집에 가게 되었던 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내가 어떤 성적을 가져와도 칭찬 한 번을 해준 적이 없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소설이나 본다며 힐난했고,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학교 수업만 듣고 1등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노력하지 않는 나를 비판했다.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내 아버지였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가 집을 떠났다. 아니 나와 남은 가족이 그를 떠났다.
인정받지 못했던 수많은 기억들, 그 속에서 존재가 흔들렸던 경험들이 삶에 수놓아져 있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이라도 하게 되는 것 같으면 다른 상처들을 자극해서 또다시 공포와 아픔을 느낀다.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을 때, 다시 말해 아이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보일 때, 지난 시간 숱한 무시와 비하 속에서 피어난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가치 없는 존재, 그래도 되는 존재라는 것이 확인되고 드러날까 싶은 공포가 엄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작 4살짜리 아이의 투정과 반항에도 흔들리는 이 존재의 가벼움은, 아이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 분노의 화살이 그 아이를 향하는 것이 옳지 않았다. 나의 매서운 눈빛은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 어린아이가 무슨 대단한 잘못이 있다고. 아니 내 영혼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정말 흔들렸다면, 흔들린 나의 영혼의 잘못인 것이다. 스스로가 연약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오랜 시간, 인정받지 못했던 나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좌절될 때마다 곧잘 화내고 분노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지탱할 뿌리랄 것이 없는 사람, 곧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었다면, 나는 타인의 거절과 무시에 예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비언어적 표현으로 ‘너를 미워해’라고 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했다. 아이는 내 노려봄을 견디다 못해 외면했고, 다시 몇 차례 따뜻한 아빠의 사랑을 찾아 눈을 마주쳤다가 돌리곤 했다.
사실은 내가 나 스스로를 못 마땅해하고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었을 뿐이었는데.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의 평가가 나를 흔들고 무너뜨릴 때가 많다. 그 앞에서 낙담한 마음은 쉽게 ‘화’라는 가면을 쓴 채 또 다른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아이의 투정에도 쉽사리 무너지는 중년의 사내란.
단지 친구가 되고 싶었던, 노력했던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던 어린 마음의 상처와 기억을 어떻게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자라고 있는 또 다른 어린이의 마음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타인을 무시한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향했던, 실은 나 자신을 향했던, 그 노려봄을 거두고 싶다. 조금 더 단단해지도록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
그날 밤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 옆에 누웠다. 첫째는 나에게 비밀을 말해줬다.
“이건 비밀인데,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아. 미안해.”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아이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아빠가 화를 내서 싫으니?”
“아니. 아빠는 내가 짜증내서 싫어?”
“우리 딸, 사랑하지.”
“나도 아빠 사랑해.”
우리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세게 서로를 안아줬다.
내일부터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