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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레이트 사람들 Jul 04. 2016

굿레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

나의 창업 이야기

5년간의 국내 증권사 경력을 뒤로하고 34살의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되었다. 창업 도전기 같은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처럼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과격한 반응들 뿐이었고 나 자신 역시 부정적인 단어들을 수 없이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며 밤을 지새웠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다시는 여의도에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너무 어리니 경험을 더 쌓아라 등등 선배들의 애정 어린 만류를 듣고 있으면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요즘같이 취업도 어렵고 경기도 안 좋은 시절에 창업이라니 무슨 엉뚱한 생각이란 말인가. 더욱이 나는 미운 7살 아들과 한창 잘 먹을 5살의 딸을 둔 가장이 아니던가. 이 글에서 내가 굿 레이트를 만들게 되기까지 있었던 짧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보려 한다. 


1. 창업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많은 선배들과의 만남


증권사에서 나는 IB(투자은행) 분야에서 IPO(기업 상장) 업무를 담당하는 Project Manager였다. 일반적으로 IPO는 비상장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상장시키는 일을  맡게 되는데 딜 전체를 관리하고 결정하는 RM(Relationship Manager)와 상세 실무 및 Paper Work를 담당하는 PM(Project Manager)로 나뉜다.


업무의 성격상 PM은 해당 비상장기업에 상주하며 해당 기업의 재무 팀 혹은 경영진과 함께 상장 프로세스를 2~3달에 걸쳐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경영진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먹게 되는 케이스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때문에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로 만나게 되는 분들 중 기업의 대표이사들이 많은데 이 분들의 무용담은 누구 하나 예외랄 것도 없이 놀라운 무용담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의 상장기업수는 대략적으로 2천 개 정도이며 이는 대한민국 전체 기업수의 1% 미만에 해당하는 기업 중에서도 엄청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다. 그러한 분들의 옆에 있으면 불타는 창업 의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속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게 된다. 


"유대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언젠가는 사업가로 살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젊은 시절 깊게 고민하고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길 바랍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게 된 충격으로 다가왔다.


2. P2P, 내가 잘 알고 내가 제일 모르는 분야


증권사에 있다 보면 다양한 산업의 산업분석을 맡게 되는 일이 있다. 나도 역시 업무와는 별개로 관심 있는 산업분야를 Study 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은행에 다니던 선배가 P2P업체에 투자 집행한 건이 있다며 P2P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투자대상으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과 향후 나의 사업으로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P2P금융의 본질은 결국 대출인데 대출 산업의 생리와 구조는 나와 가장 가까운 지인(지금의 굿레이트 가족)의 전문분야였기에 며칠 뒤 곧바로 그 지인과 함께 업계 대표적인 P2P업체 몇 곳을 무작정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P2P금융의 궁금했던 점과 한계점, 위험성에 대해 면밀하게 질문을 하였으며 답변을 듣는 과정 중에 P2P금융의 개선방향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과거 인터넷 벤처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P2P금융을 창업한 사람들의 철학과 노력이 피부로 느껴졌고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면 분명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금융산업은 나의 밥줄이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분야 중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였다. 하지만  P2P금융은 그러한 금융산업 안에서도 매우 새로운 분야이기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분야이다.


3. 나의 20대, 나의 30대


위에서 나는 대표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사업가로서의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과학자, 야구선수, 기술자, 통역가 등 내 나이와 함께 수없이 꿈도 바뀌어 갔으며 그런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증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20대 시절에는 성공의 기준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이었다. 좋은 학교에 가게 되면 좋은 회사에 입사를 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대학과 직장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런 결실을 얻기까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겪었다. 나는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되도록 빨리 돈을 벌어야 했고 이로 인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실업계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자 기계를 전공하였지만 우리 사회는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가 좋은 대우에 안정적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20대 초반에는 알바, 정비소, 야간업소 등등 돈을 벌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경험을 하려 노력하였다. 


그 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여자친구(현재의 와이프)를 남겨두고 입영버스에 몸을 실은 뒤 2년간의 군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늘의 도움 덕분인지 뒤늦은(?)철이 들어 공부를 시작하여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26살의 대학교 새내기라는 늦은 출발과 30살이라는 직장인 새내기의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당시 너무나 큰 기쁨에 와이프와 갓난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내가 이러한 그다지 재미랄 것도 없는 20대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 한 이유는 앞서 말한 성공의 기준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대 초에는 좋은 학교가 성공의 기준이었고 20대 후반에는 좋은 직장에서의 좋은 직급이 성공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니 성공의 기준은 내가 생각해왔던 어떤 특정한 조건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1. 좋은 선배들의 옆에서의 부추김과 2. 내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분야를 이른 시기에 발견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었던 지인의 권유, 3.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성공에 대한 동경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창업"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굿레이트의 정식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이러한 경험들을 가능하게 해 준 하나님, 나의 둘도 없는 아군이 되어 지원사격 확실하게 해주는 나의 와이프와 아이들, 나에게 큰 사업적 영감과 무한신뢰들 보내주는 굿레이트 가족에의 감사함을 느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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