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처방 해드립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잭 런던이라는 미국인이다. 그가 태어난 19세기 말은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금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일어난 시기였다. 저자 또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확천금을 노리고 알래스카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다윈의 적자생존과 니체의 초인사상,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회의식 등 19세기에 시작된 급진사상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돌아온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고, 단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록을 세운다. 한때는 이탈리아에서 금서로 취급되어 나치당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역설이 담겨 있는 내용이라 당시에는 너무 급진적이다는 의견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과 같은 드라마가 흥행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무분별하고 탐욕적인 문명을 반성하게 하는 동기로서 본능적 야성과 초인사상을 연결하는 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극단적인 인간의 게임을 통해 문명의 역설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인간이 아닌 개의 눈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중심으로 등장하는 벅은 따뜻한 남부의 부유한 집에서 편안하게 살던 개였다. 그러나 갑자기 돈이 궁한 정원사에 의해 몰래 팔리게 된다. 벅은 끝까지 저항하며 이빨을 내밀고 달려들지만, 결국 곤봉에 굴복하고 알래스카의 썰매 개가 된다. 그는 썰매를 끌며 야생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송곳니가 부딪히는 싸움에서 승리하여 우두머리가 되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렇게 썰매 앞자리를 차지하여 동료를 이끌어가던 어느 날, 계절이 바뀐 것을 느낀 벅은 주인의 채찍질에도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맞아 죽어가던 벅을 보다못한 손턴이라는 사람이 구해주었고, 결국 다른 썰매 개와 주인은 얼음이 깨진 호수에 빠져 죽는다. 벅은 자신을 구해준 그를 사모하며 오랫동안 따라다닌다. 그러나 손턴은 사금 캐는 것에 몰두하다가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한다. 분노한 벅은 원주민을 모조리 죽이고 늑대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야생으로 떠난다.
「곤봉과 창과 화살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그의 맞수가 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인간이 손에 창과 화살과 곤봉을 들고 있지 않을 때에는 전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 아래에 하나가 되어 썰매를 끄는 개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 이루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배를 채운다. 능력에 따라 우두머리가 되고 동료 개들을 이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정당해 보이는 세상이다. 그러나 벅은 그저 썰매를 끄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동료 개들과 달리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삶을 갈망했다. 야성의 끓어오름을 느끼고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혼자 살아남고 문명 아래 숭고한 사랑까지 느낀다. 그러다 어느덧 문명만을 쫓다가 야생에 의해 죽임을 당한 손턴의 복수를 하면서 인간은 물론 늑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한다. 그는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으로부터 살아남았고, 야생의 늑대조차 넘어서는 개가 되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과도 같은, 벅은 ‘무지막지한 능력을 갖춘 인간(superman)’이 아닌 ‘자신을 뛰어넘는 인간(over human)’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흔히들 문명은 이성과 도덕의 세계이고 야생은 혼돈과 무지의 세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문명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명 세계에서 무자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적응하는 과정은 야생의 삶과 유사하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 또한 야생과 다를 게 없기도 하다. 그리고 야성이란, 결국 자연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고 잊지 말아야 할 특성이다. 벅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태초부터 내재하고 있는 본능적 기질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락함에 취해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라는 원초적 규범 아래서 야성을 잊은 채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렇다 한들 문명의 규칙이 성립되지 않는 세상이 주어진다면 익숙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 저자는 초월적 존재가 되기위한 방법을 이 책에서 알려준다. 우리가 오래 잊고 살았던 삶의 방식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