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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덕 Jun 19. 2022

<인간 실격>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책처방 해드립니다

이 책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삼십구 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자전적 성격을 지닌 이 책은 그가 죽기 전 신문에 기고하여 유작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무기력함이 면밀히 드러난다.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인간적 연약함은 일본의 패전 후 청년들의 혼란기와 연결되었고, 지금은 현대 사회에 대한 고발 문학이자 청춘의 통과 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유년기, 학생 시대, 청년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세 편의 수기로 나누어져 있는 것과, 서문에 어느 사진 세 장에 대한 설명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사진은 웃는 얼굴이 섬뜩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사진, 두 번째 사진은 능숙한 미소를 짓고 있으나 생명이 없어 보이는 사진, 마지막 사진은 아무 표정 없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사진 묘사가 있다. 그리고 그 후에 수기가 전개된다.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요조는 타인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신은 전혀 괴롭지 않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너무도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었기에 두려움은 점차 팽배해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면 세상에 동화되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익살꾼을 자처한다. 속은 우울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나약한 여성을 볼 때면 마음이 누그러져 행복감을 느끼고는 하지만, 행복 뒤에는 더욱 심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두려움에 행복마저 회피한다. 이런 요조는 자신이 원하는 걸 숨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친구가 보여준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요조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 다짐을 한다.


“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야.”


아마 요조가 그리고자 했던 자화상은 표지 그림의 에곤 쉴레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과 유사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솔직한 내면과 본질의 모습을 파격적인 누드로 표현한 에곤쉴레. 그리고 그와 같이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긴 수많은 예술가들. 그들이 자화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자신의 한 부분인 나약함, 공포, 추악한 욕망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흐르는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들. 요조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마주함으로써 품을 수 있는 내면을 그려내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인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더욱 구석으로 내몰았던 요조는 자신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서 알코올과 모르핀에 중독이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어 폐인이 된다. 서문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진의 묘사와 같이, 자신이 도깨비라 칭했던 일그러진 자화상의 모습이 된 것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타인과의 나쁜 관계들이 지옥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식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모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모여 만들어가는 사회는 개인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세상이 정해둔 인간 자격에 맞추지 못하면 인간 실격이 되기에, 가면을 써가며 미리 주어진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익살을 부려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내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을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지를 시기별로 보여주고 있다.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한 음침한 기분이 들게 하여 읽기 힘든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그만큼 힘든 과정이기에 마주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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