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위로해주는 존재

주절주절

by 김기덕

지브리 영화를 본 사람 중에 “이웃집 토토로”를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토토로가 누군지는 다들 안다. 토토로를 깊게 알지 못해도, 빗속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서 있는 그 모습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토토로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성인이 돼서도 토토로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만화 캐릭터에 집착하는 게 유치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토로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귀여워서, 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아닌가.


그러던 내가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토토로를 봤다. 계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어린 시절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던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나서 보게 되었는데, 애니메이션이라고 단순히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겉보기에 유치해 보여도 그 안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가벼움과 무거움의 반전에 매료되어, 오히려 가장 가벼워 보이는 토토로를 찾아 본 것이 시작이었다.


푸릇푸릇한 마을, 풀벌레 소리, 연못 속 올챙이, 이슬 맺힌 잎을 기어가는 달팽이. 거대한 나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고, 아이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마을을 뛰어다녔다. 누가 놀아주지 않아도, 누가 놀이라고 만들어준 공간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자기 상상으로 세상을 만들며 모험했다. 그러던 중 마주친 것이 토토로였다. 아이들만 볼 수 있는, 묘하게 포근하고 친근한 존재였다.


퇴근하고 올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 않는 가족.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두려움. 그 곁을 토토로가 함께해준다. 병세가 악화돼 퇴원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며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은 아이에게도, 토토로는 고양이 버스를 불러 길을 안내해 준다. 토토로는 아이들의 두려움을 함께 감당해주고, 그 두려움을 잊게 해주고 있었다.

토토로는 결국 우리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 두려움을 함께 견뎌주던 어떤 존재였다. 인형일 수도, 상상의 존재일 수도 있었지만,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던 존재.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떨던 순간, 그 곁을 지켜주던 친구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불안과 상처 속에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토토로가 나타난 것 같다. 상상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함께 기다려주고, 기다림 속에 슬퍼하던 어린 시절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흐릿하고 어둡게 바래 있던 기억이 토토로를 알게 되면서 조금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세상 속에도 토토로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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