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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덕 Dec 29. 2021

새로운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주절주절


매일 같이 새벽 기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곳이 있었다. 집 앞에 있는 성당이었다. 그곳에서 마리아 동상을 보며 기도를 하는 사람과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어둠이 자욱한 이른 새벽에 나와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새벽은 하루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하지만 외로움도 함께 공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순간을 함께해주는 곳과 있다는 것은 더욱 나에게 위로가 됐다.

      

성당을 내려다볼 때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느덧 일어남과 동시에 창가로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저 평화로워 보이는 곳에 소속된다면 내 마음이 더 평화로워질까.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면 내 삶에 무슨 변화가 생길까. 나는 예비 신자 교리 과정에 등록하였고, 6개월 동안 주말 아침이면 성당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어느날 세례명을 정해야 하는 때가 왔다. 보통 세례명은 본인의 생일과 축일이 같은 성인의 이름으로 정한다. 그런 성인이 여러 명 있었다. 그 중 유독 ‘그라토’라는 성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라틴어로 ‘기쁨을 주는’이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요한, 마리아, 헬레나, 스텔라와 같이 익숙한 세례명을 택하였다. 하지만 나의 세례명은 익숙지 않아서 모두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흔치 않은 세례명일 경우 생일 때 축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는 내 마음을 봉사자분들이 존중해주셨다. 그렇게 세례를 받을 때 소원을 빌어보라는 봉사자님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또 다른 이름을 받는 순간을 기다렸다.  

    

성탄절이 되어 저녁에 있을 세례식을 앞두고 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읽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두고 있었기에 일찍 성당에서 미사를 기다리며 전자책을 대출받아 보고 있었다.  책은 열네 살인 고아 모를 길러준 로자 아줌마와 주위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간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하밀 할아버지는 출생 서류가 불분명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던 모모에게 선생과도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모모는 자신을 아들처럼 길러준 로자 아줌마가 실은 친엄마에게 양육비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실감을 느낀 모모는 할아버지에게 찾아가 이런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족이 없는 모모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로자아줌마가 몸이 좋지 않아 죽음을 앞두었을 때, 모모는 자신이 아줌마의 생을 관통하고 있는 죽음을 원망하며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말과 함께 이야기가 끝났다.               


그 순간 성당 내에 모든 불이 꺼졌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자신의 몸을 바치러 내려오신 분의 모습이.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 때문인지, 지은 죄를 고한 뒤 찾아오는 새로운 삶 때문인지, 문득 내가 상처 주었던 수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하지 못해 아픔을 준 이들이. 만약,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런 상처들을 주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새로운 나의 이름이 무겁게 다가왔다.      


세례를 받으며 빌 소원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받을 또 다른 이름이 지닌 뜻처럼, 누구든 새로운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웃으며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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