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time <DEXTER>
적어도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이 죽이려들 때는 언제나 살해의 이유가 존재한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라도 '내 앞에 보였기에'라는 아주 처참한 변명거리가 때때로 이유가 된다. 사람을 죽이는 이유 중에 가장 아이러니한 것이 바로 더이상의 살인을 막기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미국드라마 <덱스터>는 자신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교육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혈흔 분석가가 범법자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청소부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로, 오프닝 스퀀스, 연출, 그리고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덱스터의 내레이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이애미 한 경찰서에서 혈흔 분석가로 일하는 덱스터는 경찰 사이트와 미해결 사건에 쉽게 접근하여 마약상, 살인자, 장기매매상 등을 처리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다. 그는 한 컨테이너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살해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피를 뒤집어진 3살의 고아로 발견되었으며 그를 거둬준 형사 해리의 가정에서 아들로서 여동생 데브라 함께 새 삶을 살 게 된다. 덱스터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일찌감치 알아챈 해리는 어린 덱스터에게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과 스스로의 호기심을 표출할 여러 방법을 제시해주면서 교육했고 그 결과 나쁜 놈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마로 성장하게 된다.
작품을 보기 전에 왓챠에서 평점 및 한 줄 평을 보는 편인데, 가장 눈에 들어온 평이 "오프닝 작품성이 돋보인다"라는 짧은 표현이었다. (사실 이것보다는 더 길고 장황했다) 영화에서 오프닝 스퀀스를 꽤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이 작품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고 왓챠를 통해 이 시리즈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2006년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엄청나게 와닿는 표현이 아니라는 걸 빨리 경험했지만, 혈흔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드라마 포스터가 주는 느낌에 이끌려 시청을 계속했다. 결국 덱스터 시즌 1은 올해 본 범죄 드라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되었다.
시즌 2까지 보다 보면 일반적인 사이코패스와 다르게 참 인간적인 살인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감각할지는 몰라도 그의 바운더리에 있는 인물들에게 설정 오류만큼이나 정을 많이 준다. 양아버지 해리가 세상을 떠나고 모건이라는 성을 가진 인물이 셋이 아닌 둘이 되었을 때, 덱스터는 자신의 여동생을 자신보다 더 생각한다. 본인의 실체가 밝혀질까 두려워하고 종종 모든 것이 밝혀져 감옥에서 면회를 온 데브라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계속하는 이유는 다른 이를 위해서가 아닌 그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덱스터는 자신이 범법자들을 귀신같이 골라서 죽이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만들지 않는다. 살아가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우쭐해 하지도 않는다. (시즌 2에서는 스스로의 모습을 괴물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살인하는 이유는 그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리는 자신이 거둬준 작은 아이가 이렇게 성장할지 꿈에도 몰랐겠지만, 최선을 다해 꽤 도덕적이며 그럴싸한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 살인마적 본능이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한 선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어도 괜찮은 인물들을 처리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전후 사정을 모두 고려하진 않았지만, 덱스터는 나름대로 등급을 매기고 자신이 살해할 타겟이 생기면 의도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혼자 사는 남자, 혈흔 분석가, 똑똑한 두뇌는 웬만해서는 의심을 받기 힘들다. 그렇게 치밀한 살인을 한 후에 그는 언제나 한 방울의 피를 채취해 보관해놓는다. 이것은 전시를 위한 트로피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훈장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기록이며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피 한 방울에 대한 소장 욕구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연쇄살인마 혈흔 분석가 덱스터가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세상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곳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여자친구와 동료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자신을 내 던질 만큼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본능을 발휘했다. 이쯤 되면 덱스터가 죽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을 만했냐? 그건 또 아니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바이며, 설령 죽음이 마땅한 인간이었음에도 살인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우리는 덱스터가 만든 살인과 죽음이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찰 배지를 달고 총을 남발하는 것과 혈흔 하나 남기지 않기 위해 온 방을 비닐로 뒤덮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살인이 어떻게 다르고 비슷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