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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Apr 28. 2022

캐리 멀리건의 특별한 복수극
<프라미싱 영 우먼>

 누구나 잊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안고 가는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그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마치 뇌 속에 프린트되어 영영 지워지지 않을 문신처럼 말이다. 만약 그 기억 때문에 평생의 행동과 선택이 좌지우지된다면 어떨까. <프라미싱 영 우먼>은 혈기왕성한 대학시절 가장 친한 친구 '니나'의 비극을 목격한 의대생 '카산드라(캐리 멀리건)'가 그 사건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카산드라가의 문신 같은 기억인 니나의 사건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줄거리

7년 전 친한 친구의 집단 성폭력 피해 사실을 목격하고 이에 따른 어이없는 처분에 의대를 자퇴하고 서른가까운 나이에도 작은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카산드라는 밤이면 술에 취한 척 남자들의 관심을 끈다. 만취 연기를 펼치며 남자의 집까지 가게 되면 카산드라는 갑자기 돌변해 남자들에게 처단 아닌 처단을 내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대학 동기 '라이언(보 번햄)'를 일하는 카페에서 마주치게 되고 다른 동기들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7년 전 사건의 주동자였던 '알 먼로(그리스 로웰)'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카산드라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니나의 사건에 대해 소문을 퍼뜨렸던 대학 동기, 묵인했던 학장,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던 판사를 차례로 찾아가 친구 니나가 당했던 방식을 되새기며 복수를 시작한다.


자극적인 소재에 줄거리를 쭉 읽다 보면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수위를 기대할 만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캐시(카산드라)가 남자들과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처단하는 방식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시각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사실 캐시가 남자들의 집에서 어떤 짓을 벌이는 건지도 불명확하다. 단순히 겁을 주는 건지 진짜 살인을 하는 건지도 모를 이 아이러니한 처단에는 늘 그렇듯 어떠한 서사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 니나가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같은 대학교 동기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이에 대한 비디오도 촬영되어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니나를 '헤픈 애'로 부르기 시작할 때쯤 캐시는 의대 생활을 접고 매일 밤 술에 취한 척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남자들에 대한 울분의 복수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니나가 그 일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영화에선 정확한 언급이 없다. 니나의 어머니조차 캐시에게 "이제 니나를 잊고 네 삶을 살아라"라고 한 시점에서도 어머니만 등장할 뿐 니나에 대한 어떠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당연하게도 이 사건에 남겨진 인물들 중 철저하게 가해자를 주목하기 위해서다. 캐시가 클럽에서 술에 취했을 때도 남자들이 캐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음담패설), 만취해 거동이 불가한 그녀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만 나올 뿐이다. 7년 전 사건에 대해서도 가해자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주목할 뿐 니나가 그 사건으로 인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대를 졸업해서 그 사건을 잊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할 필요가 없다. 사실 이 사건은 가해자로부터 시작된 일방적인 전개이니까.


소문을 냈던 동기와 학장을 찾아가 당사자와 그의 가족에게 누구나 의심하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을 조성하면서 비슷한 무게의 복수를 한 캐시에게 남은 사람은 가장 책임이 큰 알 먼로다.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과의 총각파티를 하는 그를 찾아간 캐시는 스트리퍼로 위장한 채 알 먼로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러고선 앞서 복수한 이들에게 했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니나를 기억하느냐고. 그들에겐 별거 아닌 해프닝 수준이었던 니나의 이야기는 쉽게 잊혀졌고 그걸 혼자만 감내하고 있었던 캐시의 지난 시간과 그의 삶은 더욱 비참해진다. 



캐시의 복수와 처단, 니나의 현재 이야기에 대해서는 묘사가 없었던 것과 상반되게 알 먼로가 캐시의 정체를 알아채고 베개로 숨통을 막는 장면은 컷도 없이 아주 길게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아마도) 실제로 숨통이 막히는 진짜 시간을 편집 없이 통으로 보여주면서 그 어떤 배경음악이나 효과 없이 씩씩대며 캐시를 죽이는 알 먼로의 숨소리로 채운다. 이 영화에서  가해자를 주목하는 이유와 방식을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이 영화가 마냥 통과하지 많은 않은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캐시가 알 먼로의 죄에 대해 입증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고 또 하나의 피해자를 자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걸 관객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 기억을 문신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명쯤은 있다고 전하며 마무리 짓는다.



93회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제목 <프라미싱 영 우먼>은 '장래가 유망한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 여성은 니나가 될 수도 캐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간 이와 비슷한 실제 사건에서 나온 어이없는 처분의 명분인 '이 가해 남성은 앞으로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이기에...'에 대한 의문 제기가 아닐까 싶다. '장래가 유망한 젊은 여성은 왜 배제하는가'에 대한 힘 있는 제목이다.


캐시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의 이런 도발적인 연기가 반가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서양권에서 많이 소비되는 '굿걸'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동시에 반항적이고 생각이 읽히지 않는 표정들을 많이 보여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DC의 할리퀸 이미지와 가장 들어맞다고 생각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흥행을 이루진 못했지만 니나와 캐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넷플릭스에서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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