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데이트 폭력범 검거에 실패했다.
그러니까 남녀불문 술이면 술 하면서 코가 삐뚤어져 마실수 있는 21세기, 필자는 오늘 처음으로 데이트 폭력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이 동네에서 빌라가 많기로 소문난 작은 동, 그곳에 어린이집 바로 앞 작은 놀이터는 봄이면 벚꽃을 보는 이들로, 겨울이면 눈싸움을 하는 이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5월 20일 오전 1시경, 어떤 남성은 상대 여성에게 언어적 폭력을 가했고 가령 한 20미터 밖에서 그 놀이터를 건너는 필자는 그의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시발 네가 문제야'
'못 알아들어?'
'네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하면서 소리치는 남성은 상대 여성을 곧바로 해칠 셈이어였고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필자는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을 위해 1366(여성 긴급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본레 신고자의 익명성 여부에 관심이 없었고, 혹시나 당사자가 아니면 신고 접수조차 되지 않을까 봐,
'혹시, 제3자가 데이트 폭력에 관해 고발할 수 있나요?'
라고 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였지만 112로 다시 신고라는 답변을 받았다.
곧바로 112에 해당 상황과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피해 여성에게 신체적 폭력이 곧 가해질 거 같은 분위기라고 신고 접수를 한 후, 남자가 편의점으로 용무를 보러 간 사이, 피해 여성에게 곧바로 달려가, 혹시 피해 입은 곳은 없는지, 괜찮은지에 대해 확인한 후, 신고가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피해 여성은 '정말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정말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하지만 이런 신고가 처음이었던 필자는 편의점에서 볼일을 보고 되돌아오는 남성을 피해 놀이터 담벼락에 숨었다. 정말 솔직하자면, 그 사람과 언어적, 신체적으로 싸울 용기가 없었다.
담벼락에서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자 했을 땐 이미 그들은 자리를 떠난 후였고, 내 신고를 도왔던 다른 여성 두 분도 놀이터 밴치에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가 곧바로 귀가했다.
필자는 그 남녀가 떠난 자리를 보며 혹여나 다시 돌아와 또 다른 폭력을 행하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소리 없이 라이트만 살짝 켠 경찰차가 놀이터 주변을 정차하지 않고 그냥 쓰윽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 해당 신고를 했던 필자는 엄청난 허탈함과 동시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 남녀가 놀이터를 재빨리 피한 건 어쩌면 필자가 그 피해 여성에게 '신다 했다'라고 미리 언질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어쩔 수 없는 괴로움과 무력함이 함께 도사렸다.
'나는 그 사람에게 신고했다고 말하면 안 됐어', '괜히 내가 말을 걸어서 경찰이 오기도 전에 자리를 피했나 봐'하는 어쩔 수 없는 지배구조가 필자를 덮쳤고 그 놀이터에서 반경 150M도 안 되는 집에 다다를 때까지 내 볼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필자가 만든 신고에 익명은 필요 없었다. 필자가 어디 사는지, 그 폭력을 가하는 남성에게 중요하지 않듯이 어쩌면 이 세상은 데이트와 사랑 이르는 어쩌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프레임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가장 무감각했다고 볼 수 있다.
왜 우리 여성에게 일어나는 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 폭행에 바로 설 수도, 이에 대한 철저한 신고와 고발 그리고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다음을 바라지 않건대, 실상 정말 그다음이 있다면, 필자는 데이트 폭력에 관경을 보고도 말릴 수는 없을지언정 다만 신고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실로 침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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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성이기에 이 싸움에 육체적으로 동참하고 싸울 수 없다는 걸 비통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