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모자, 그리고 정치

by 안개꽃 눈송이




정치란 참으로 놀라운 존재다. 그것은 단순히 권력의 다툼이나 제도의 운영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깊숙이 맞닿아 있다. 숲에서 원숭이들이 서열을 다투듯, 인간도 도시와 광장에서 같은 본능을 반복한다.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기에, 그들 역시 협력과 반목을 반복하며 집단을 유지한다. 유인원의 후예로서 우리는 서로 기대고, 서로 밀쳐내며, 결국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정치란 어쩌면 그 오래된 본능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나는 조국 사태를 떠올릴 때마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한 그 유명한 구절,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당시 돌을 들었던 사람들 중 과연 죄 없는 자가 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누구나 흠을 지닌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돌을 든다.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조차, 그 안에는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돌은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왜곡된 무게다—그 무게가 가장 아프게 다가온다.


정치인들의 이름은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유승민, 한동훈, 나경원… 그리고 강선우, 이혜훈, 김병기 사건들. 잘잘못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잘잘못을 이용해 좌표를 찍고, 모진 말로 돌을 던지라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군중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그 속에서 교묘히 얻어가는 것이 많다. 정치란 본래 인간의 불완전함을 다루는 장이지만, 그 불완전함을 이용해 군중의 분노를 증폭시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이다.


나는 종종 노회찬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이 가장 가슴 아파했던 것은 아마도 반대편의 악의 가득한 집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순수한 사람들이, 정의를 믿는 사람들이, 돌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었으리라.


여기서 나는 하나의 퍼즐을 떠올린다. 모자 퍼즐이다. 몇 사람이 줄을 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각자의 머리에는 모자가 씌워져 있지만, 자기 모자의 색은 볼 수 없다. 오직 앞사람의 모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맨 앞사람은 아무도 못 보고, 맨 뒤사람은 모두를 본다. 그런데, 이 퍼즐을 맞추는 사람은 제일 앞 사람이다.


그 이유가 참 놀랍다. 결국 누군가가 자기 모자 색을 맞추려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행동, 침묵과 발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사실 정치도 그렇다. 진실은 사고와 깊은 성찰 속에서만 드러난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돌은 그 추정의 산물이고, 누군가의 침묵은 그 질서의 균형이다. 중요한 것은—그 질서가 진실을 향해 수렴하느냐, 아니면 선동을 향해 발산하느냐이다. 맞다. 대부분은 쉽게 발산한다. 그래서 악플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정치에서 순수한 마음의 돌이 때로는 가장 무겁다고 느껴진다. 사실 그 돌은 진실을 겨냥했지만, 때로는 좋은 사람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린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그들의 얼굴은 기억 속에 남아, 우리에게 묻는다—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앞사람의 모자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너의 모자를 더듬어 보고 있는가.


그러나 역사의 순간에는 돌이 필요했다. 독재와 불의 앞에서 침묵은 공모가 되었고, 그때 던져진 돌은 폭력이 아니라 자유의 신호였다. 중요한 것은 돌을 던지는 방식이다. 퍼즐 속에서 성급한 외침이 전체의 해를 망치듯, 정치에서도 깊은 사고 없는 돌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침묵과 성찰 끝에 던져진 돌은 거짓의 벽을 깨뜨린다. 앞사람의 모자만 보고 성급히 외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뒷사람의 모자까지 살피며, 침묵이 필요할 때는 기다리고, 말해야 할 때는 분명히 말하는 것. 그렇게 군중들이 조금은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인간다운 얼굴을 되찾을 때, 우리가 던지는 돌은 누군가를 상처내는 돌이 아니라—진실을 밝히는 돌이 되리라.



작가의 이전글관계를 넘어, 나와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