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간 들판에 잠든 집 위로 눈 내리면 고요가 흰 숨결로 번져간다.
바람의 길을 따라 차가운 눈꽃이 흩날리고 돌담은 묵묵히 그 빛을 받아 겨울의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새벽은 느리고 조용히 다가와 눈발 속에 길을 감춘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산담은 오직 침묵으로 말을 한다.
그 침묵 속 어느 한 귀퉁이에서 나는 오래된 제주를 본다.
구멍 숭숭 뚫린 돌은 휘파람처럼 바람을 불어내고,
까마귀 울음은 하늘에 흩날려 눈 내린 들판 위로 스며든다.
달빛은 오름의 어깨를 감싸고 햇살은 바다 위로 번져온다.
창가에 앉은 노인의 그림자, 장작을 패는 손길, 그 작은 흔적들이 겨울을 견딘다.
중산간 제주 겨울은 혹독하지만 그 혹독함 속에서만 제주의 다움은 빛난다.
차갑고 고단한 날씨가 오히려 따뜻한 불빛을 부른다.
눈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에 흩날려도, 햇살에 녹아도, 그 흔적은 돌담에 남아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