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의 바람

by 안개꽃 눈송이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입추라 한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드문 드문 떠올랐다. 과거 더위 속 산행을 하던 중에도 느꼈고, 집에 머물던 어느 조용한 순간에도 문득 바람에서 찬기운이 느껴졌다. 지금도 공기는 여전히 불같이 뜨거웠다. 햇살은 여름의 기세를 꺾지 않았고, 나무들은 여전히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 바람은, 이상하게도 가을을 닮아 있었다.

찬기운은 말없이 내게 스며들었다. 피부에 닿는 순간, 나는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직은 여름인데, 바람은 이미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입추란, 그런 시기인가 보다. 절정의 더위 속에서 가을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주역에서는 극강 한 양의 기운 속에서도 음의 기운이 자라난다고 한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기쁨 속에 슬픔이 깃들고, 성공의 순간에도 불안은 조용히 자라난다. 모든 것이 극에 달하면, 그 안에서 반대의 기운이 싹튼다. 뜨거운 여름 속에서 찬 바람이 불고, 환한 빛 속에서 그림자가 짙어진다.

그 바람을 느끼던 그날, 나는 계절이 말을 걸어온다고 느꼈다. “지금이 끝이 아니야. 다음이 오고 있어.” 삶도 그렇게, 고요한 전환 속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람을 느끼는 순간마다 조금씩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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