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나는 산을 그리고 해를 그리고, 두 개의 산 정상 중앙 부근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그렸다. 아마도 그림은 조화롭지 않았고, 색감은 부족했으라. 그러나 내 손은 나의 꿈을 그렸고, 마음은 자유로웠다. 플라톤은 예술을 현실의 모방이라 했지만, 그 순간 내 그림은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였다. 산 위의 폭포는 불가능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가능성과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나가며 말했다. “산 꼭대기에서 폭포가 있을 수는 없잖니.” 그 목소리는 칸트의 이성처럼, 상상을 규율하려는 듯했다. 친구들은 웃었고, 나는 크레파스로 그리기를 멈췄다. 그림이 틀렸다는 말보다, 내 존재의 자유로운 표현이 부정당한 듯했다. 사르트르가 말한 “타자의 시선”이 내 상상의 날개를 꺾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미술시간이면 그림은 그려야 했다. 그냥 그렸다. 짝꿍은 48색 크레파스를 펼쳤고, 나는 그날 문방구에서 산 12색을 들었다. 색의 풍요로움이 창작의 전부는 아니지만 위축된 현실이었다. 내 앞의 새침하던 여학생이 아무 준비 없이 학교에 등교한 것 같았다. 그녀는 도화지를 빌리고, 친구에게 크레파스를 요청하는 모습은 당당해 보였다. 그녀는 친구가 사용하지 않겠다는 단 세 가지 색—검정, 하얀색,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어떤 색—으로 평균대 위의 체조 선수를 그렸다. 선생님은 만화 같다고 꾸짖었지만, 나는 그 단순한 선과 색에서 삶의 역동성을 보았다. 색이 많다고 잘 그려지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단순함 속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림은 여전히 낯설고 멀게 느껴졌지만, 어느 미술시간 이상하게 마음이 선 하나에 끌렸다. 한 줄의 선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마음에 들면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 그렸다. 선들은 모여 어느덧 산속의 집이 되었다. 모든 선이 마음에 들었다. 채색은 점수를 위한 의무였다. 하지만 색을 칠하면 나의 그 순수한 선들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선만 남기고 제출했다. 그 당시 마음으로는 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점수는 바닥일 테니... 그래도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물감이 없어도, 색이 없어도, 현실을 닮지 않아도, 그림은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메를로-퐁티가 말한 “지각의 현상학”처럼, 내 손과 종이는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도구였다. 선 하나하나는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흔적이었고, 그 자체로 충분했다.
그리고, 산 꼭대기의 폭포는 에인절 폭포처럼 진짜 존재했다. 내 어린 상상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세계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예술적 직관이었다. 그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존재와 세계가 만나는 철학적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