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 앞에서

by 안개꽃 눈송이

“쓸모없는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요?”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냉혹한 시선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점점 더 제도화되고 있다.

일본 영화 플랜 75는 그 시선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국가. 죽음을 선택할 자유라는 이름 아래, 국가는 효율을 말하고, 사회는 부담을 말하고, 가족은 침묵한다. 그 속에서 한 노인은 묻는다. “내가 살아 있는 게 죄인가요?”

한국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그 질문에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노인들의 고독사, 빈곤, 외면 속에서 한 여성이 그들의 마지막을 돕는다. 그녀는 죽음을 권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준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늙어가고,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 병든 사람, 늙은 사람,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 사회가 ‘효율’이라는 잣대로 잘라낸 모든 존재들.

하지만 인간은 도구가 아니다. 쓸모가 아니라 고유함으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이고, 위로이고, 사랑이다. 삶은 효율이 아니라 연결이다.

플랜 75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산을 오른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다시 붙잡는다. 그 선택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사회가 쓸모를 묻는다면, 우리는 존엄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운 사회이고, 우리가 살아야 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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