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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르미 Apr 19. 2021

이렇게 엄마가 됩니다

아몬드책을 읽고

엄청난 뒷북인데,

사실 이 책은 읽지 않으려고 했었다.

물론 <아몬드>가 인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기 있다는 게 그 책이 재미있다는 건 아니지만,

<아몬드>는 어찌 됐건,

소설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는 소설이었기에.

이 소설이 다루는 아몬드,

우리 뇌에 있는 편도체만 아니었다면

분명 진작 읽었을 것이다.





사실 편도체에 관한 이야기는

나에게 너무 불편하다.

왜냐하면 2년 전, 이맘때 몇 달간

나는 아들이 자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행히도 아닙니다)

대학병원과 치료 센터를 알아보고

아이를 관찰하며 뇌과학책을 읽었던 나날들.

이런 자폐스펙트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편도체가 작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작은 편도체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학습을 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아몬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윤재  


감정을 못 느끼는 아이



나는 그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편도체는 뇌에서 감정을 담당한다.

꼭 편도체만 감정을 담당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됐건 감정, 특히 공포는

편도체가 없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 윤재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이로 그려진다.





 주인공 윤재는 자폐는 아니었는데,

지능을 정상인 걸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의 진단명을 감정 표현 불능증

Alexithymia 라고 붙여준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영혼(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

을 뜻한다.




윤재는 감정 표현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을 헷갈리는 아이로 그려진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는 걸

무척이나 어려워한다.




  곤이  


감정을 억누르는 아이



키가 작고 깡마른 아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서 있었다.
단단한 몸이었다.
맹수 같은 눈빛이었다.






주인공 윤재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주인공인 곤이를 만난다.

곤이는 그와 전혀 다른 아이였다.

뭐랄까. 윤재는 공포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

공포심이 없어 보이는 타입이라면

곤이는 공포가 마음에 가득한데,

공포를 억누르며 감정이 없는 것처럼

차갑게 행동하는 아이.




한마디로 얘기하면

곤이는 문제아였다.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는

우연한 사건들로 꼬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문제아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며 못살게 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괴롭힘을 당하는 윤재는 오히려

곤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변한다  

(살짝 스포일러 있음)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리고 우정이기도 하다.

사랑과 우정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조건 없는 믿음이

과연 구제불능인 사람들도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후천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곤까지.

이 둘 다 바꿀 수 있는 걸까.





<아몬드>는 그렇다고 답한다.





사랑과 믿음을 주면 사람은 변한다.

물론, 그 변화가 아주 드라마틱 하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 윤재처럼 타고난 장애가 있는 경우는

그 변화가 남들에 비하면 사소할 수 있다.

<아몬드>에서는 이를 스케이트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렇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곤을 통해 감정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곤이를

오히려 윤재가 이해하게 된다.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서로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랑과 믿음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손원평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알게 됐다.

작가님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19년째 영화 일을 해온

영화감독이었던 것.

어쩐지 소설이 굉장히 선명하게 잘 그려진다 했다.

심리 묘사는 물론이고, 소설 속 장면장면도

묘사를 잘해놓아 덕분에 매끄럽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속 무대. 주인공 윤재의 낡은 헌책방.

그 위에 있는 작은 빵집.

윤재의 무표정한 얼굴과

곤이의 화나고 슬픈 얼굴.

그 모든 게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는 소설이다.

(이런 걸 보고 가독성이 좋다고 표현하겠지..)



손원평 작가는 아이를 낳게 되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몬드>의 마지막에서도 썼듯이,



아이가 커가면서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란 질문과 대답으로 쓴 책이라는 거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부모도 커가는 일이에요.




그러면서 손원평 작가는 이야기한다.

부모가 커가기는 하지만,

엄마로서 성장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다만 작가로서의 삶에 다채로움은

줬다고 말한다.




그녀의 소설과 인터뷰를 읽으며

나도 나의 아들과, 자폐로 의심했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시간들이 나를 엄마로서 성장하게

해줬는지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기는 하다.




사랑과 믿음은

우리 모두를 바꿔놓는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 변화는 더 크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었다고 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사랑과 믿음을 통해

감정을 못 느끼는 아이가

갑자기 감정이 풍부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는 어제보다 미세하게 성장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 다 커버린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변하고 있다.



평범이라는 게 뭘까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건

대체 누가 만든 기준일까

그리고 나도, 윤재처럼 누군가를

온전히 믿어줄 수 있을까




손원평 작가님은 동화와 장편,

그리고 행복에 관한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본 기사가 벌써 6개월 전이니

아마 지금쯤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엔 사랑과 믿음이

가득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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