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나 살았던 부산의 어느 구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산 중턱에 있는 기숙사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언덕배기에 있는 집에 사는 것은 처음이다. 집 근처 구경도 하고 저녁식사를 혼자 해결하고 싶어서 좀 걸어 다니기로 했다.
집 근처 50m 근방에는 빵집이 세 군데나 있었다.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빵집이다. 나중에 돌아오면서 본 광경이었는데, 포장된 한 종류의 빵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무도 손님은 없었는데 이제 문을 닫을 저녁 7시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빵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단길'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무조건적으로 감성이 필요하다. 요즘엔 '갬성'이 없으면 뭐든지 시시하게 느껴진다. 바로무라 식당의 갬성은 부산 냄새 폴폴 풍기는 식당 이름에 무심히 던져져 있는, 마치 30~40년 뼈해장국 장사를 한 것처럼 '차림표'라는 이름으로 툭 던져놓은 메뉴판에서 온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과 '올드한 감성' 사이에는 한 가지 기준이 더 있는 듯하다. 뭔가 요즘스러운 킬링포인트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마라맛으로 버무려진 감자탕과 뼈해장국이 요즘스러움을 더 보태준다. 이 콜라보가 마음에 든다. 방문 의사가 생긴다.
해리단길의 매력은 자세히 보아야 '이런데가 있었네?' 한다는 것이다. 바로무라 식당 옆, 입간판은 있지만 가게가 어디 있는 건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골목을 들어가야 보이는 요거트집이 있었다. 구석구석 건물 사이로 입간판이 내놓아져 있다면 모퉁이를 돌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가게들이 나온다. 미로 찾기 하듯이.
해리단길을 구석구석 돌아보면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예쁜 가게들을 볼 수 있는데, 처음 봤을 땐 뭘 파는 가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여기 가게들의 특징이다. 그렇기에 자세히 보아야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게 무슨 가게인가 싶어 가게 앞을 계속 기웃기웃거렸다. 무슨 가게인지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이 뭔가 이런 가게들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해리단길이 해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아직 붙지 않았을 때, 그것도 아주 한참 전에 이 동네와 거리는 찐로컬들만 이용하는 곳이었을 테다. 1970년대와 80년대, 유신시절 때 지어지고 문을 열었던 가게들이 한결같이 그 자리에 터를 잡아 계속 장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해리단길을 걸으며 어떤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80년대와 2020년대가 번갈아 나오지만, 뭔가 중간은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레트로 컨셉으로 감성 돋는 카페들과 가게들이거나, 아니면 아예 진짜 옛 건물이거나.
어떤 사람들은 해리단길이 감성적이고 힙한 카페가 많아서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아직도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을 통해 옛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해리단길을 걷다 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마천루들이 뾰족뾰족 솟아나 있는 이질적인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자기가 무엇을 파는지 알려주지 않는 가게들, 대놓고 무엇을 장사하는지 광고하는 옛 가게들, 그리고 높게 솟은 해운대의 마천루들. 제 각각 자기주장을 펼치는데 딱히 조화롭진 않다. 그냥 공존하고 있을 뿐.
관점을 좀 다르게 해서 보면, '부조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부조화'에서 'HIP'스러움을 발견한다. 조거팬츠에 부츠나 힐을 코디하는 것처럼 이상한 부조화를 다르게 해석하면 트렌디함이 된다. 어떻게 보면 조화롭다는 것이 비율이 맞거나, 패턴이 같거나, 균형이 맞거나인데, 이것에 '아름답다'라고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맘.
해리단길을 돌면서 부조화 속에서 재미있음, 매력있음을 발견했다. 또 글을 쓰면서는 꼭 뭔가 맞지 않아도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오히려 매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는데, 앞으로의 나에게 필요한 생각거리가 되어줄 것 같다.
Camera: Fujifilm X-S10, 7artisans 35mm F1.2
Film simulation: Kodakportra400 (based on Classic chrome)
Location: Haeundae-Gu, Bu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