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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 Monkey Apr 27. 2022

차가운 얼굴 공포증

누군가의 차가운 얼굴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누군가가 화를 내면 그것은 뜨거운 얼굴이다. 차가운 얼굴은 표현하자면 애정이 식어버린, 인정이 없는 무관심한 얼굴이다. 그 냉랭한 낯빛은 나를 두렵게 한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그 차가운 얼굴을 보이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하게 되고, 몸이 굳어 뻣뻣해지고, 그 사람을 피하고 싶어 진다.


차가운 얼굴을 본 최초의 기억은 다섯여섯 살 쯤된 어린아이였을 때였다. 엄마와 시장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투정을 부렸었는지 엄마는 차가운 얼굴을 보이고는 홱 돌아서서 혼자 집으로 가버렸다. 길에 혼자 남겨져 그 차가운 인상을 본 충격에 휩싸인 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친구로 남기로 하고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는 의무적인 말 몇 마디에서 느껴지는 온도와 텅 빈 눈에서 느껴지는 무심함을 보자 난 그 사람과 친구조차 될 수 없겠구나를 직감하고 내 안으로 숨어버리고는 가면을 썼다.


최근에 본 누군가의 차가운 얼굴은 애정이 식었다기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 애정이 생기지 않는 무관심함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난 후 나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똑같이 차가운 얼굴로 대응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의 차가운 얼굴은 나의 차가운 얼굴과 같을까?


내가 드러내는 차가운 얼굴은 사실은 섭섭함이 묻어난 얼굴이다. 당신의 관심을 원한다는, 다시 나에게 그 애정을 드러내 달라는 요구이다. 모순적이지만 다시 관심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차가운 얼굴에 반영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다를 수도 있다. 내가 상대방의 차가운 얼굴을 해석하고 받아들인 것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차가운 얼굴을 보면 마치 그 시선이 영원히 나를 그렇게 바라볼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저 사람의 나에 대한 관심과 호감은 이제 끝났구나, 라고 단정 지으며 내 마음에 빗장을 채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나는 그 관계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된다.


차가운 얼굴 공포증은 나를 이런 상태로 몰고 간다. 자기 소외의 상태. 또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이는 상태. 서운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해 힘들고,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되어 외롭다. 그 괴로움의 고리를 끊으려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첫째, 타인의 차가운 얼굴은 나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나의 차가운 얼굴에도 서운함과 애정을 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듯, 상대방의 차가운 얼굴도 어떤 마음으로 드러난 건지 알 수 없다. 둘째, 그 차가운 얼굴이 계속 지속될 거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어떤 감정도 영원하지 않다. 셋째, 나의 진실된 마음의 표현으로 그 차가운 얼굴을 녹일 수 있다.


이 세 가지 생각은 차가운 얼굴 공포증을 뛰어넘으려고 내가 새롭게 시도해 본 것이다. 관계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차가운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좋았다. 상대방이 나를 향해 짓는 무관심한 표정에 상처받아도 나는 따스한 얼굴을 건넬 수 있다. 관심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려는 용기를 내어 본다. 누군가에게 내 모습이 차가운 얼굴이 아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차가움 속에서 피어낸 벚꽃, 봄을 알리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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