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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Oct 31. 2021

가끔 그녀가 떠오른다


남아공으로 출장을 가면, 현지 마케팅 에이전시와도 미팅을 많이 했다.

우리 회사의 한국인들은 그 마케팅 에이전시의 한국 직원들을 특히 아끼고 좋아했는데, 그래서 자꾸만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 마음은 이해가 됐다. 같은 회사람들이랑은 맘도 불편하고, 일의 연속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에이전시 사람들도 그걸 좋아했을지는 의문이다.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는 마음으로 술자리를 응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그녀는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십 살 무렵의 언니였다. 한 번도 그녀와 일대일로 대화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그녀가 궁금하고 자꾸 눈길이 갔다.

먼 남아공 땅에서 여자 혼자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강도도 두 번이나 당했다고 한다) 어쩌다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서 일하게 된 걸까?


우리회사 사람들은 클라이언트로서 에이전시에 있는 그녀에게 많은 일을 주었지만 누구도 그녀를 하대하거나 쉽게 대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그녀는 위트 있게 분위기도 맞추고 술도 잘 마셨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 자리를 즐기는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능숙했지만 그게 그녀가 특별하게 여긴다거나, 열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것도 웃기지만,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짐작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궁금했나 보다.


그녀는 당시 이십 대 후반이었던 나에게 한 번도 어린애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 나이대 흔한 선배들처럼 자기들의 어린 시절 얘기를 곁들여가며 조언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선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먼저 선을 넘어와주는 사람들에게도 곁을 내주는데 오래 걸리는 내가 그 언니와 개인적으로 친해질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다 한참 출장을 가지 않던 때가 있었는데,

회사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들으니 그 언니가 별안간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만두고 인도로 요가를 배우러 갔대나.


아 그래요?

라고 대답하며 무덤덤한 척하려 했지만 마음속은 궁금함으로 마구 일렁거렸다. 굳이 알아보려면 에이전시에 일하는 다른 사람한테 연락처를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우리 둘은 멀고 공적인 사이라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마구 그녀를 검색했다.


결국 찾지는 못했다. 요즘도 드문드문 그녀가 생각난다.

내 기억 속 그녀의 나이에 내 나이가 가까워지는 만큼 내 두려움과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내가 그녀처럼 될 것만 같은 두려움,

그렇게 사는건 마음이 어떤지 하는 궁금함,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언니는 나보다 몇년 먼저 겪었으니까 자꾸만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기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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