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랑바레/밀러피셔 증후군 #4
한참을 누워있다가 O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눈이 이상하다고 불안하다고 한번 전화한 것 때문에 그는 매일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O는 아직 내게 몇 번 만나지 않은 남자에 불과하다. 물론 첫 느낌이 좋아서 혹시 좋은 관계로 발전하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아무리 긍정성을 잃지 않았다 한들 며칠 만에 회복될 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쯤에서 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고민 끝에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답장을 했다.
Hey O, I am still in a bad situation. To be honest, I am a bit in panic,
but trying hard to stay strong.
We only met a few times, but I felt good with you and was hoping to check if it continues with more dates.
But it seems like a time for me to focus on my recovery first.
Once I feel better, I will contact to you again. Will see you again if you are still up by then.
조금 우습기도 했다. 고작 몇 번 만난 남자. 아직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이 남자에게 병실에 누워 이렇게까지 공들여 마무리 인사를 한다고? 지금 내 꼴을 봐. 말 한마디 나오지 않고, 눈은 사시가 되어있고, 걷지도 못하는 나. 지금 남자한테 답장을 보낼 때야?
이십 대 초반의 나였다면 그냥 답장도 하지 않았거나 혹은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어 매일 문자나 통화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모든 인연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다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염두에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가 아닌데 애써 붙잡는 건 나와 상대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연은 백 개의 씨앗을 뿌려도 하나가 움트기 어렵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이젠 누군가와 멀어짐을 애써 붙잡으려 하거나 슬퍼하지 않되 내 곁에 있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띵동. O에게서 답장이 왔다.
Good Afternoon! I really hope you recover soon from this and you most definitely will!
And I understand and let's focus on you getting better as soon as possible :)
I'm here if you need me to be and happy to have future d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