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고 나니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
많은 것을 잃게한 이 병에 걸리고도
그닥 절망하지도 않고 나름 그 시간을 즐기며 극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독한 이 병을 거의 다 이겨갈 때 쯤에서야
아 이 경험이 내게 마음의 후유증을 남기기는 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참 많이 독립적이고 삶에서 원하는 것이 뚜렷한 나였는데 그런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이제는 혼자가 불안했다. 누구든 같이있고 싶어졌다. 삶에서 원하는 것이 없어졌다. 내가 왜 해외에 나와서까지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던걸까.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
병이 다 나아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내 마음이 얼마나 연약해져있는지가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울의 심연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날 하늘에서 조약돌이 떨어져 나를 밀어버렸다.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쑥 떨어졌다.
한숨도 자지 못한 나는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가 걱정할까봐 늘 다 해결된 뒤에야 말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죽을 것 같아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랬는데도 전화를 끊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냥 엄마 곁에 있고만 싶었다.
조금 진정된 후 엄마에게 말했다.
나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 내 인생에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엄마가 대답했다.
할아버지 94세고 할머니 91세야. 엄마 오래 살거야, 엄마가 죽기 전에 너는 어른이 될거야. 걱정하지마.
어린아이처럼 펑펑울며 엄마를 찾는 서른 다섯의 딸에게 환갑이 넘은 엄마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엄마는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 존재인가. 죽을때까지 자식 걱정에 눈을 못감을 것이다.엄마는 이제 아흔이 넘은 당신의 엄마한테는 펑펑 울며 안기지 못하는데도 내게는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
(202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