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부터 독립하기
엄마, 이제 도시락 안 싸주셔도 돼요
결혼 얘기가 오갈 때쯤이었던 것 같다. 2021년 여름이었을까, 더 이상 엄마의 도시락을 받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이 얘기를 꺼낼 때 나의 마음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브런치의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들 '엄마에게 잘하라'는 내용을 나는 오프라인에서도 많이 들었던 상태였다. 엄마가 일하는 일터에서 매일같이 자식들 점심 도시락을 싸주고 저녁에 집밥을 해준다는 얘기를 하신 모양이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들이 모두들 '이런 엄마 없다, 자식들은 엄마한테 엄청 잘해야 한다'라고 얘기했고 엄마는 이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면서 '들었지? 넌 나한테 잘해야 돼'라고 했다.
내가 뭘 잘 못한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물론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나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금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마에게 다달이 생활비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이 이상의 것을 바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색내고 싶으시면, 더 이상 도시락은 안 싸주셔도 돼요.
물론, '생색'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엄마가 일들 시작한 이후로 육체적으로 힘들어졌고 그 사실을 알고도 평소처럼 도시락을 가져가는 것이 민망했다. 그래서 상황이 이러니 신경 쓰면서까지 내 도시락을 챙기진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둘러둘러말했다. 게다가 내 도시락뿐만 아니라 사촌동생의 도시락도 싸고 있다 보니 그냥 제일 나이가 많은 내가 도시락이 필요 없다고 말하면 자연스레 밑에 동생들도 알아서 사 먹을 것 같았다.
그럼, 점심은 사 먹으려고?
바깥 음식은 곧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그냥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에 있는 반찬을 담아가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말하고 다음 날부터 바로 직접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도시락을 만든다기 보단 정말 담고 싸기만 하였다) 하지만 아침부터 부엌에 달그락 소리가 나니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맨 처음 도시락을 쌌던 순간으로 다시 회기 한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냥 내가 할게, 너는 다른 준비 해."
"이렇게 하면 엄마가 싸주는 거랑 뭐가 달라. 내가 하게 내버려두어."
이 짓을 일주일 하다가 둘 다 포기하고 지금은 밖에 나가서 잘 사 먹는 중이다.
오늘 도시락 싸왔니?
대표님의 이 물음은 곧, 도시락 있어도 우리 나가서 점심 같이 먹자는 소리이다. 아니요 안 싸왔습니다! 대표님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저렇게 물어보시는데, 도시락 싸서 다닐 적에는 도시락을 그대로 남겨오니 엄마가 매우 싫어했다. 너희 대표는 미리 말을 안 해주신다니? 응.. 안 해주셔...
도시락 없는 점심 생활을 한 지 2,3개월 된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은 '점심 메뉴 고르기'. 회사가 신사 가로수길에 있어서 먹을 것은 많지만 그렇다고 점심메뉴 고르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점심에 먹을 만한 백반집이 많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점심에 먹는 메뉴가 늘 정해져 있다.
신사 해남집 (점심 백반)
더좋은참치 (점심메뉴)
미미면가
송셰프
콴안다오
지구당
스몰 디쉬 빅쇼
신사 치킨 클럽
오사카 카레 콘유
창화당
이렇게 적고 보니 돌려막기 하는 식당 치고는 많은 편인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친구 같은 사이의 엄마였지만 요즘은 더욱더 그렇다. 특히 요즘에는 자기 전 1,2시간 정도 서로의 생각과 의견 등 얘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엄마, 아픈 곳 있으면 언제든 말해! 숨기지 말고!
"그러면 매일 말해야 되는데?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올해 12월 중순부터 결혼생활을 한다. 나한테는 결혼이라는 의미보다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져 사는 '독립'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따라 서로에게 더욱 애틋(?)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나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제도 엄마랑 그릇들 보고 수저세트, 칼, 도마 등 주방기구를 장만하러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다시 엄마 도시락을 먹을 날이 올까?
이제부턴 내가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엄마에게 요리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