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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성 Feb 26. 2020

눈도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의 눈은 쌓이고 있는가?

서울에 상경하여 매년 눈 오는 걸 봤던 거 같다. 지방에 있을 때는 몇 년에 한 번씩, 심지어 10년에 한 번씩 눈이 왔었기 때문에 눈 구경?(촌놈이라 이해 부탁^^)이 너무도 신기했다. 어떨 때는 몇 시간씩 멍하니 눈 오는 광경만 지켜봤던 적도 있었다. 서울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눈 구경을 몇 번 했는지 생각하다 보면 더 계산이 빠를 때가 있다.


서울에서의 2월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이 쌓이려면 어느 정도의 눈이 내려야 할까’. 지면에 닿자마자 사르르 긴급하게 자취를 감추는 이 친구들은 어느 정도 지속되어야 정체를 드러낼까. 시간이 지나 눈이 그친 뒤 일반인들은 바닥에 고인 물만 보고 이것이 비였는지 눈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눈에 당장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 단순한 논리로 봤을 때, 처음 지면의 온도가 눈의 온도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에 눈이 쌓이지 못하고 지면에 흡수당하면서 지면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 같은 과정을 거듭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지면의 온도와 눈의 온도가 동일시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부터 눈은 녹지 않고 지면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기후의 변화로 눈이 그친다던지, 비로 바뀌게 될 경우 우리는 새하얀 눈길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일상 속에서 비슷한 예로 임계점 또는 콩나물 물 주기 등의 표현을 많이 쓴다. 이렇듯 우리가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속의 힘’이 필요하다. 지속되지 않는 힘, 결과 없는 노력은 일반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끌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은 간과한 채 결과만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우리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과정은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우리 모두는 쌓이지 않은 눈, 끓지 않는 물, 자라지 않는 콩나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눈도 쌓여야 그 위에서 썰매를 타든 스키를 타든 할 수 있고, 물도 끓어야 라면이든 국도 끓일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없이 애매한 상태에서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쌓일 수 없어’,‘물은 끓을 수 없어’,‘콩나물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한다. 그러고는 그 과정만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과거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눈이 쌓이지 않았어’ , ‘끓을 뻔했는데 끓지 않았어’ , ‘자라지 않는 불량 콩나물이었다고!’ 등의 식으로 말이다.


나 또한 처음 서울에 상경하여 여기저기 정말 많이 옮겨 다녔다. 본업이 부동산업이다 보니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기본급도 없을뿐더러 임무를 마치면 토사구팽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덕분에 1년 동안 이사를 6번씩이나 옮겨 다니며 자연스레 ‘미니멀리즘’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성격이 물건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몇 년간 사용하지도 않는 옷이나 각종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를 위해 내 자가용(승용차 세단)에 짐을 맞추다 보니 쓸모없는 짐이나 물건들이 버려졌다. 2년간 입지 않은 옷들은 과감히 버려버리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낡은 물건들은 가차 없이 버렸다.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들이 구분되었다, 또한 내가 자주 입는 옷의 스타일(내가 좋아하는 타입)과 혹해서 샀지만 거의 입지 않는 옷의 스타일(싫어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 명확해졌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이득까지 보게 되었다. 가령 옷이나 물건을 살 때 어떤 종류의 스타일을 사야 내가 오랫동안 정 들여 가며 사용할 수 있게 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불필요한 소비나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반강제적 미니멀리즘 실천이라는 장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가혹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마치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를 더욱더 초조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어디 한 군데 적응하며 정착생활이 시작될만하면 또 다른 변수가 찾아와 나를 이동하게 만들었다. ‘세상엔 온통 나를 이용해 먹을 사람만 있구나’라는 생각이 앞을 더 캄캄하게 만들었다. 육체적으로 춥고, 배고프고,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는 고통보다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느껴졌기에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결핍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육체적이든 정신적으로든 나에겐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 일했었다. 도중에 다 포기하고, 우리가 흔히 안정적이라 말하는 월급을 받으러 갈까도 수없이 고민했지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아닌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본업에 더 집중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지나가고 좋은 날들이 분명 올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다. 그렇게 몇 년간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부동산업계의 끈을 놓지 않았더니, 어느덧 성장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이라는 끈을 꼭 잡은 채 겪은 경험과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자양분이 되고, 그로 인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물도 나오게 되었다.


쌓이지 않는 눈은 없으며, 끓지 않는 물도 없다. 자라지 않는 콩나물은 더더욱 없다. 우리가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진정으로 신뢰하며, 인내하고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이다. 당장은 가시적으로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라,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성숙해있고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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