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책 #1.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이 세상의 수많은 제제들에게.

by The G G

이 책을 읽고 도서관에 반납한 지 벌써 한 달 이상 지났다. 많은 생각에 잠겼던 책인데 서랍에만 묵혀두기 아까워 글을 완성한다.



2023-09-10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 도서출판 동녁.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언젠가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고, 그 제목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나는 정작 읽어보지 않았던 책을 엊그제야 다 읽었다. 읽는 내내 뭔가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건 제제의 상황이 안쓰럽지만 현실적으로도 앞으로 개선되거나 해결되지는 않을 거란 절망감이 먼저 와닿았기 때문이다.


뭔가 답답하고 우울한 결말인 것 같아서 그냥 도서관에 반납을 할까 하다가 끝까지 읽어보자 해서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니 나의 생각과 공감이 매우 짧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내 가슴에 평생 묻고 담아두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는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옮긴 이의 글을 읽고 나서다.


브라질에서는 장난이 심한 아이를 까뻬따라는 사탄의 이름을 따서 까뻬친냐라고 부른다고 한다. 까뻬따는 사탄 중에서도 가장 약한 수준의 사탄인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켜 여자의 치마를 들어 올리거나, 스카프를 날려 버리거나 길거리에 빗물 웅덩이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을 빠뜨려 젖게 하거나, 심한 돌풍을 일으켜 멀쩡한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돌부리에 걸려 사람이 넘어지게 하는 등 사람에게 심한 해를 끼치지 않고 장난을 치며 골탕을 먹인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주변 환경과 교육의 영향으로 억제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 누구나 그런 장난의 욕망과 호기심이 내면에 있다는 말이 무척 공감되었다.

특히 올해 우리 반에는 제제와 같은 까뻬친냐들이 너무도 많은데 학교에서는 안정적인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교육을 하고 있지만 나도 교사지만 가끔은 사회화의 명목으로 아이들의 개성을 잘라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누르는 건 아닌지... 교육이라는 행위에 대해 한 번씩 되돌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1960년대에 쓰여서 그런가? 한국의 6.25 전쟁 직후와 비슷한 지독하게 가난한 현실과, 제제의 장난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폭력으로 제제하는 당시의 시대가 마음 아팠다. 지금 그렇게 때리면 바로 가정폭력에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텐데..


힘들고 모진 상황에서도 제제에게는 수호천사 어른들이 몇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 아리오발두 아저씨 - 같이 노래를 부르며 악보를 팔았던... 악보를 다 팔아서 돈을 벌었지만 노래를 부르며 제제가 많이 힐링을 했던 것 같다.

2.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 - 간식 싸 올 형편이 못 되는 것을 알고 돈을 주어 빵을 먹게 했고, 제제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준다.

3. 뽀루뚜가 아저씨 - 제제의 인생을 바꾸어준 진정한 수호천사.

또 하나,

제제는 언제든 터놓고 말할 친구(비록 상상으로 대화를 하지만..) 제목처럼 라임 오렌지나무가 있어서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도 아니라는 점.



특히 우리 반의 수많은 제제들...

내가 아이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순수하고, 아이들이 벌이는 일이란 실상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일들이 대부분인데 선생님이라는 안경을 낀 순간 아이들은 말썽꾸러기가 되고 만다.

올해 유독 열 살짜리 제제들과 밀고 당기기, 엎치락 뒤치락하며 많은 에너지를 쏟고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나도 제제의 수호천사 어른들처럼 제제를 믿어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엔 우리 반엔 너무 많은 제제들이 있다는 점...

이도 저도 못하는 현실에 끼어있는 듯하다. 낑낑대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안경을 끼고 혼내기 전에

'아, 너도 제제구나!'

하고 한번 생각이라도 해본다면 제제들도, 나도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