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으며, 보고 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하자마자 흥행가도를 달렸다. 보러 갈까 하다가 흥행이 잘되다 보니 괜히 또 안 가게 되더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사극 장르여서 분명 재미는 있겠는데 예상되는 느낌이 있었기에 그리고 당분간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기에 망설였던 듯하다. 지난날 <명량>을 보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했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 즈음하여 무려 1,500만 관객수를 목전에 두고 나서는 그래도 이 정도로 역사적인 흥행 영화이니만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집에서 TV 영화 채널을 통해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를 봤는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유머가 넘치는 대사 및 장면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재미있더라. 또한 매스컴을 통해 장 감독님이 출연했던 여러 프로그램이 재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촬영장에서 권위의식을 지양하는 부분 등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주말에는 보러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 관객수 역대 1~2위인 <명량>, <극한직업>을 못 봤는데 지금 시점으로 3위이면서 2위 이상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왕사남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늘 가던 동네 지점이 아닌 모처럼 청계천을 걷다가 그 근처에 있던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을 오랜만에 찾았다.
이미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대한 듣지 않았던, 즉 사전 정보는 최대한 방어한 채 갔는데 유배지에 선왕이 오기 전 마을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장항준 감독과 유해진 배우의 조합은 뭐 유머 부분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초반부에는 특별출연 및 감초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매우 돋보였다. 금성대군 역의 이준혁 배우도 물론 좋아하는 배우지만, 동명의 내가 정말 정말 애정하는 이준혁 배우가 마을 구성원으로 나오는데 그가 나오는 잠깐잠깐의 장면이 역시나 재미있었다.
특별출연의 안재홍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유해진 배우와 티키타카를 하는 데 정말 환상의 케미와 웃음을 선사했다. 또한 내가 최애 하는, 역시 특별출연한 박지환 배우는 언젠가 지금의 유해진 배우와 같은 위상까지도 거머쥐리라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등장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큰 기대만큼이나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는 큰 배우다.
영화를 본 어떤 이는 유해진의 독 무대요, 원탑 영화라 표현했다. 다른 주역 배우들 역시나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스토리를 이끄는 배역으로 신 급의 연기를 펼친 유해진 배우는 단연 빛이 났다. 1인 연기도 듀오 연기도 다인과 합을 맞추는 연기 모두 훌륭했으며, 진중한 연기와 코믹 연기 모두 소화력이 뛰어났다.
즉, 유지태, 박지훈, 전미도 배우님 등 전 배우진이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해 내며 영화를 빛냈지만, 특히 유해진 배우 아니었으면 역대 흥행 TOP 3 까지는 못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했기에 자칫 뻔한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을 장항준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유해진 배우를 필두로 한 배우진이 대작을 만들었다.
많은 관객분들은 역시나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눈물을 쏟아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보다는 조금 다르게 초중반부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마을사람들이 유배 온 선왕이 끼니를 하지 못하는 부분을 걱정하고 식사를 뚝딱 해치운 부분에서는 기뻐하는 그 장면에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 선하고 순박한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의리와 낭만이 예전만 못한 요즘, 영화 속 엄흥도와 충신들과 백성들의 모습은 감명 깊었다. 당대에는 충절 및 의리, 낭만 추구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길게 봤을 때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에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분명 긍정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정도 흥행이 되려면 n차 관람객들이 많다는 뜻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n차 관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과 연기 등 전 요소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는 내용이지만 잘 모르는 내용을 재 조명한, 흡인력 강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강했기에 한 번 볼 때도 재미있었지만 또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역사 공부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의욕도 일으켰다.
영화가 주는 이야기 외 김은희 작가님의 배우자이며 예능인으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님의 이야기 역시 내겐 뜻깊었다. 대중에게 영화인으로 보다 예능인으로 더 인지도가 높았던 장항준 감독님이 이번 작품으로 주목받게 된 점은 아무 관계없는 나도 기쁘더라. 감독님의 역량에 비해 영화가 다소 안 풀린 점이 있지 않았나 했는데 이번에 해소되었다는 점, 그리고 다소 대기만성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 결과는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으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각자가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조금씩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끝나고 서로가 느낀 점에 대해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흥행과 작품성을 다 갖춘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