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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환경에 저항하는 방식

사고를 넓히는 것

by 유지경성

사고를 넓히는 것은 도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생각보다 그 범위가 제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과거를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던 음식은 늘 할머니가 해주시던 것 중 하나였고,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 역시 야구나 지구과학처럼 내 일상 안에 존재하던 것들이 전부였다.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주어지는 것들, 부모님과 친척들이 보여주는 직업 정도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한된 환경 안에서 좋아하고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일을 찾는 것은 분명 큰 행복이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다”라는 말처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행복을 찾는다”는 철학자들의 말처럼, 결국 행복은 성취가 아니라 발견의 영역에 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더 넓은 가능성과 다양함을 찾고 싶다면, 아래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도 의미 있다. 내가 지금 따르고 있는 흐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추진하는 것들이 진짜 ‘내’가 선택한 것인지, 혹은 주어진 환경의 연장선인지. 이 선택을 위해 나는 충분한 경험과 노력을 했는지, 내 세계관은 충분히 넓혀졌는지 등.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다. 단순히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기엔 세상은 넓고, 배우고 경험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고를 넓히는 일은 나에게 중요한 인생의 과제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스스로 방향을 정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학원을 다닐지 말지 정도의 결정이 전부였고, 부모님의 환경 안에서 주어진 학교와 생활에 그저 적응하며 지냈다. 대학 진학도 겉보기엔 자유로운 선택 같았지만, 실상은 (가), (나), (다)군 중 하나를 고르는 수준이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 열심히 했다기보단, 지금 돌이켜보면 승부욕과 끈기로 주어진 과정을 그저 따라간 셈이다.


대학 입학 이후 다양한 경험들은 분명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그것들조차 선택한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제공된 안전한 경로였다. 공대를 선택한 순간부터는 미래의 진로 또한 전공의 영향 아래 놓였고, 취업 준비도 단 하나의 자기소개서로 마무리되었다.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100가지 중 1가지를 자유롭게 고른 느낌은 아니었다.


이러한 순응의 흐름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환점은 첫 직장을 퇴사한 일이었다. 처음 런던에서 일하게 된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나는 설계나 생산 부서에서 일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 배치는 달랐고, 그렇게 런던에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게 되었다. 이후 몇 년 뒤 대학원에 입학했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그때부터 나는 비로소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 방향성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공대생이자 조금은 무지했던 대학원생, 취준생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예측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 결정은 나를 크게 바꾸었다.


특히 모두가 정년까지 다니는 회사를 '퇴사'한다는 결정은 내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사고의 확장’이라 부른다. 모두가 흐름을 따르는 가운데, 나 혼자 방향을 바꾸는 선택은 외롭고, 무섭고, 불확실했다. 예컨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특정 직장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컨설팅, 회계법인, 사모펀드 등 다양한 선택지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덕분에 큰 의문 없이 흐름에 편승해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흐름에서 ‘이탈’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모두가 걷는 행렬에서 벗어난다는 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을 주변에서 얻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내 결정을 믿었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 선택을 통해 나는 비로소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대학원’이라는 경험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사고체계를 스스로 깼다는 사실이다. 마치 새장 속 새가 문이 열려 있어도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사고를 확장하고, 낯선 선택을 해보는 용기와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는 일은 중요하다. 평생 도전적인 결정을 계속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젊은 시기에는 이런 사고의 확장과 다양성에 대한 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2의 변화, 다시 한 번 사고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 선택이 정답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예전의 첫 ‘이탈’을 선택하던 그때보다 나는 훨씬 안정되어 있다. 그때는 내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줄지 두려웠고, 늘 정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더 넓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나는 그 여정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과정조차 의미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확장된 사고의 끝에서, 나는 또 한 번 나다운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주어진 환경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Meganebashi Bridge, Nag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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