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는다. 주로 쉬는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글로 옮긴다. 그래서 휴가를 단순한 쉼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정돈하고 정리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한다.
평소에 업무가 몰리는 시기엔 생각할 여유가 잘 없다. 내가 하는 일에는 사이클이 명확히 존재하고, 바쁜 사이클이 시작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지나간다. 그럴 땐 떠오르는 생각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키워드 정도로만 적어두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꺼내 본다. 휴가 중에 그 메모들을 보며 정리된 글을 쓰는 일이 많다.
이런 습관은 대학생 때부터 있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혼자만의 노트를 만들어 기록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 메모들을 다시 보면 내 생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혹은 어떤 부분은 여전히 그대로인지 돌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 나갈 일이 부쩍 많아졌다. 나는 원래 언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특히 영어는 확실히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도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 전공도 공학이었다. 영어와 멀어지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런던에서 일하게 됐다. 주변에서는 실력이 있어서 간 줄 알지만, 사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업무도 익숙하지 않았고, 영어는 더더욱 어려웠다. 말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인 회의에서 “정당하고 타당한 집단 린치”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도 그에 맞는 말을 꺼낼 수 없어 답답했던 시간이었다. 버티는 것(Soldiering through)이 전부였다.
그래서 야근을 하고 돌아온 밤에도 BBC 라디오를 틀어놓고 알파벳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국식 영어로는 회의 내용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고, 발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언어를 새로 익히는 건 시간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드는 일이다. 네이티브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그걸 어느 정도 인정한 상태에서 그냥 오래 버텨야 한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틀려도 우기고, 말이 안 통해도 일단 부딪혔다. 그렇게 시간을 쌓다 보니 “얘는 영어는 잘 못하지만 일은 열심히 하네” 정도의 평가는 받게 됐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그래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에도 베트남 호치민에 출장 와 있다. 비행기를 타거나,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를 내려서 등 이동하는데 있어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내가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들춰보며 잡다한 생각을 정리한다. 요즘처럼 해외를 자주 오가게 된 이유가 뭘까, 가끔 나도 궁금해진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런던 시절이 떠오른다.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회의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있던 나, 그리고 매일 밤 라디오를 들으며 스스로와 싸우던 시간들.
조금 뜬금 없지만,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다. 이야기 전개도 동화 같고, 군데군데 유쾌한 장면도 많아서 여러 번 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열어보기 전까진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거든.”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작년에는 처음으로 어머니와 둘이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회사 연수로 프랑스에 머무는 일정 중, 내가 유럽에서 가장 좋아했던 스위스 루트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는 여행할 때 계획을 세세하게 짜기보다, 구글맵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먼저 찍고, 일단 가본다. 그렇게 나만의 루트를 만든다. 스위스는 비교적 루트가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움직였다. 예를 들어, 로잔 근처 언덕의 포도밭에 들러 주인에게 와인을 구매한다거나, 블로그에 없는 길이지만 예쁜 곳을 가보는 식이다.
이번 글에서 남기고 싶은 기억은, 어머니와 함께했던 피르스트 트레킹 중 일어났다. 트레킹 도중 어머니가 피곤해하셔서 중간 벤치에 잠시 앉았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80세라고 하셨고, 영국 요크셔 출신인데 지금은 스위스 그린델발트에 거주하고 계셨다.
나에게 직업을 물어보시기에 내 회사 이름을 말씀드렸더니, 본인도 회계법인 PriceWaterhouse 출신이라고 하셨다. PwC냐고 되묻자, 자신이 일할 땐 프라이스워터하우스와 쿠퍼스앤라이브랜드가 합병되기 전이었다며, PriceWaterhouse라고 정정해 주셨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이 경험했던 M&A 거래들, 자문했던 사례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그 자체로 인상 깊은 대화였다. 마지막에 해주신 조언 한마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Never throw a name card.”
명함을 버리지 말라는 그 말은, 사람과의 연결을 쉽게 끊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할아버지는 한때 런던에서 파트너(임원) 승진에서 탈락했지만, 벨기에에서 파견 나와 있던 파트너와의 좋은 관계 덕분에 벨기에 오피스에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이후 스위스로 이동했고, 은퇴 후에도 스위스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인생이란 진짜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단기적인 평가나 상황 하나에 너무 좌우되지 말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고 기회를 열어두는 게 결국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연구원이 되겠다고 공대에 진학하며 영어를 피했던 내가 해외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내 커리어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언가에 대한 과도한 확신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열어둔 문틈으로, 때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들어온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서 스위스 피르스트에서 적었던 메모를 정리하며.